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로케팅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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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경기 침체로 씀씀이가 줄어든 소비자들이 일반 생활용품은 싼 것을 쓰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한 두 가지 물건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 위안을 얻는 ‘작은 사치’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보스턴컨설팅은 이를 ‘로케팅(rocketing) 소비’라고 불렀다.


이런 소비 패턴은 일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문학과 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가 1967년 수필집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기침체 상황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소비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100엔숍의 유행과 2000년대 유니클로의 등장으로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끈 가운데 루이비통 등 명품 매출이 10% 가까이 늘어난 것이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한다. 데라야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좁은 아파트에 살지만 식사만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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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들어 경기 침체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점심은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마냥 돈만 절약하는 게 아니라 평소 꼭 갖고 싶은 물건이나 기념일 등에는 아낌없이 쓴다. 이에 따라 유명 백화점에서는 30만~50만원짜리 초콜릿과 90만원대 프로포즈 패키지 상품 등 밸런타인데이 상품이 매년 두자릿수 판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가격이 250만~400만원인 이탈리아 스메그 냉장고는 40~50대는 물론이고 30대 주부들도 앞다퉈 찾는다. 여행상품 가운데서는 가격이 비싼 유럽 상품이 동남아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전문가들은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없는 젊은이들이 푼돈을 모아서라도 자기 만족형 소비에 몰두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기야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움츠리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닌 것 같다. 알뜰하게 살다가 한 번씩 로케팅 소비로 기분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오철수 논설위원

오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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