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같은 당의 문재인 전 대표를 무서운 속도로 쫓고 있다. 안희정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상승세가 가파르다.
안 지사는 지난 10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지난주보다 9%포인트 상승한 19%로 2위에 올랐다. 문 전 대표는 전주보다 3%포인트 하락한 29%의 지지율을 기록해 1위를 유지했지만 박스권에 갇힌 모양새다.
안 지사는 지역 기반인 충청도에서 전주보다 6%포인트 오른 27%의 지지를 받았고 호남(9%→20%), 부산·경남(2%→19%), 보수(6%→17%)와 중도(12%→25%), 진보(13%→21%) 등 지역과 이념성향별 집단에서도 골고루 상승했다.
정치권은 안 지사가 20% 고지를 넘어설 경우 ‘문재인 대세론’이 무너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에서 20%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고 확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10% 후반대를 기록해 문 전 대표를 위협했지만 탄핵 가결 이후 20% 고지를 넘지 못하고 추락했다. 안희정 캠프는 “지지율 20%가 ‘매직넘버’”라며 마의 고지에 다다른 안 지사의 지지율 성적표에 고무된 분위기다.
하지만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이 중도·보수층의 지지라는 점에서 문 전 대표와의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점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안 지사의 상승은 민주당의 다양한 후보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당원이 주된 유권자인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분열 대신 통합의 메시지, 국민에게 어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영장청구가 기각됐을 때 야권은 이구동성으로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삼성그룹이 미르· K스포츠 재단에 거금을 출연하고 최씨 측에 뭉칫돈을 건넨 것은 대가를 바라고 한 만큼 구속했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법의 최종심판을 기다리지 않아도 확실한 심증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야권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달랐다.
자신의 정치철학과 소신을 ‘광장 민심’과 맞바꾸지 않았다. 그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잘라 말했다.
‘대기업=척결 대상’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증폭시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정치의 결’이 달랐다.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심상치 않다. 태풍으로 번질지, 잠깐 미풍에 머무를지 등의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가 지금 대선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정치권은 물론 차기 대선후보들이 안 지사의 가파른 지지도 상승세에 놀라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사이에서 ‘도토리 키재기’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일반의 분석과 여론을 뒤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신드롬’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도 내놓았다.
그가 민주당 경선은 물론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요인은 뭘까. 그는 정치적 의제 선정 능력이 탁월하다. ‘대연정론’을 던져놓고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어젠다 세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안보 분야에서도 보수층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정부 간 합의를 섣불리 변경할 수 없다”며 ‘우클릭 메시지’를 내놓았다. 선명성을 위해 좌파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는 분명하게 차별화된 전략을 세운 데 대해 보수층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안 지사를 지지하는 핵심 유인으로 작용한다. 안 지사는 과거 노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정무팀장으로 일하며 당선에 일조했으나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참여정부에서 공직을 맡지 못했다. 친노 유권자들 사이에는 노 전 대통령 대신 감옥에 갔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안 지사에 대한 동정여론이 많다.
따라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안 지사가 친노 뿌리를 공유하는 문 전 대표와 벌일 ‘적통 경쟁’은 앞으로 전개될 대선 레이스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으로 볼 때 안 지사가 ‘페이스메이커’에서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에 점차 힘이 실린다.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정책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면서 진보진영은 물론 중도·보수층을 껴안을 수 있는 확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보수층을 아우르는 정책을 얼마나 정교하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고 유권자들로부터 정책의 진정성을 얼마나 평가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레이스의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 지지율 19%로 급등=안희정 충남지사가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안 지사가 1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1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9%)와의 격차를 지난주 대비 22%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좁히면서다. 안 지사가 공공 부문 일자리,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등 민감한 현안에서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문재인 먼저, 다음이 안희정’이라는 차차기 대통령 후보라는 프레임을 탈피한 결과다. 정치권 내에서는 안 지사의 급상승을 ‘안희정 신드롬’이라고 평가하며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대권을 거머쥔 지난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돌풍’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안 지사는 이날 자신의 지지율 상승 요인에 대해 충남 천안시 테딘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당 기초자치단체장 연수 개회식에 참석, “제 철학과 목표가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으로부터 이해를 얻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희정 돌풍에 非文 출렁=안 지사의 상승세에 민주당 내 비문계 의원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들 사이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하루 종일 화제가 되고 있다”며 “이번주에서 다음주에 의원들 이동성이 커지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친문계가 많다고 하지만 의원들이 아직 문재인 캠프 쪽에 많이 참여한 것은 아니다”라고도 지적했다.
비문계인 이종걸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제안에 상당히 공감한다”며 “자신감에 불타 있는 개혁 진보 쪽에 상당히 경각심을 주는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비문계인 박영선 의원도 전날 “안 지사의 대연정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옳지 않다”고 옹호했다. 다음주에는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지지율 차이가 더 좁혀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전 대표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악재’가 7~9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전 전 사령관은 부인 및 ‘5·18 발언’ 관련 논란에 휩싸이자 “연수하던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상승세 이유는? 중도층 공략=안 지사는 최근 여권과의 ‘대연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청산 대상으로 평가하는 것과 매우 상반된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이기 때문에 여권과의 협의는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다. 안 지사는 ‘선거대책본부 중심’이 아닌 ‘당 중심 선거’를 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문 전 대표가 매머드급 싱크탱크와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것과 차별화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끝내더라도 당이 정책과 철학으로 계속 집권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든 누구든 규칙을 준수해서 손해 보는 것보다 로비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현상, 극복 과제는? 야권 지지층 선택=안 지사는 이날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전주보다 7%포인트 상승한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 전 대표가 7%포인트 하락한 57%를 기록했는데 여전히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안 지사가 마의 고지인 20% 지지를 넘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야권 지지층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당내 경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주된 유권자가 야권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당내 경선에서는 광대한 조직을 보유한 문 전 대표에게 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은 문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중도·보수층의 역선택일 수 있다”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권 출마를 확실히 선언한다면 지지율이 이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안희정, 과연 어떻게 다른가
文 “고용·성장 정부 주도”…安 “시장이 이끌어야”
文, 운동권 정서·보편적 복지 선호…대연정 불가론
安, 현실주의자·빈곤층 먼저 지원…개혁 위해 대연정
민주 경선이 대선 결과 가능성, 격렬한 충돌 불가피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이 급등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여권 후보들의 지지부진한 상황을 보면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경쟁했던 지난 2007년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처럼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결과가 곧 대선 결과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2위인 안 지사는 같은 친노 출신이지만 상당히 다른 색깔을 지닌다.
문 전 대표의 경우 1970~1980년대 운동권 정서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친일·군부독재 잔재 청산, 부정축재자 재산 몰수, ‘탄핵 부결시 혁명’ 등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큰 정부’를 선호한다. 정부가 나서서 적폐를 대청소하고 재벌을 규제하며 신산업을 일으켜 고용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월18일 일자리공약 발표회에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강조하면서 “작은 정부가 좋다는 미신을 이제 끝내야 한다”며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 고용주”라고 말했다. 복지도 보편적 복지를 선호한다.
반면 안 지사는 “젊었을 때 혁명을 꿈꿨다”고 말했지만 이후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 국내적으로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현실적인 직업정치인이자 (의회)민주주의자’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칙을 만들고 심판자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 창출 역시 기본적으로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주역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나서서 ‘내가 일자리 몇 개 만들겠다’ 하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그게 우리가 말하는 일자리인가”라며 “진정한 일자리는 많은 기업들의 도전과 투자가 만들어내는 일자리”라고 말했다. 복지는 빈곤노인·장애인을 먼저 돌보는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
안 지사가 주장한 대연정에 대해 문 전 대표는 “내 생각과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주변의 생각은 다르다. 친문 세력 안에서는 “더이상 안희정 지사의 우클릭을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부패 세력 대청소라는 촛불 민심에 비춰볼 때 진보 진영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발언” “아직 촛불 민심이 활활 타고 있는데 어떻게 새누리당과의 연정을 논의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반면 안 지사는 “현재와 같은 4당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대연정 없이는 어떤 개혁과제도 풀어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당내 경선전략도 다르다. 문 전 대표 측은 대규모 캠프 구성과 영입 등 세 과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면 안 지사는 “이 같은 대규모 캠프 구성과 세 과시는 구시대의 방식”이라며 소규모 캠프 구성과 지원자들의 연쇄 지지 선언 캠페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권력 앞에서는 부자지간에도 원수가 되는 법”이라며 문재인·안희정 두 대선 후보 사이의 격렬한 충돌을 예상했다.
/안의식선임기자·박형윤기자 miracl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