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광풍이 불던 골드러시는 그리 머지않은 우리 역사에도 등장한다. 1930년대 일제의 수탈 시절 황금광을 좇는 이들이 금맥과 노다지를 캐러 강원도 산천을 휘젓고 다녔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은 하천과 논밭은 물론 남의 묘지까지 파헤쳤다. 29세에 요절한 천재 작가 김유정(1908~1937)은 골드러시에 휩쓸려 한때 금광에 눈이 멀기도 했다. 그의 이런 경험은 두 편의 소설에 등장한다. 김유정이 작고 2년 전에 쓴 ‘노다지’와 ‘금 따는 콩밭’이 그것이다.
‘금 따는 콩밭’에서 가난한 소작인 영식은 수재의 꾐에 빠져 콩밭 일구기를 접고 눈이 벌게지도록 밭을 헤집는다. 하지만 갈망하던 노다지를 캐지 못한 채 한 해 농사만 망치고 만다. ‘노다지’ 역시 황금광에 눈이 먼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두 소설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단순한 희화 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제의 수탈정책에 피폐한 농촌과 가난에 시달린 식민지 백성의 울분과 좌절을 풍자적으로 담은 사회소설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골드러시는 1929년 미국의 대공황에서 연유한다. 세계적인 불황에 금값이 치솟자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수탈의 일환으로 금 생산을 적극 독려했다. 당시의 금맥 캐기가 얼마나 심했던지 일본은 1930년대 세계 3대 금 생산국으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이 탓에 해방 이후 남한의 노다지 금광은 거의 사라지고 부스러기 금광만 음성과 해남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금은 불안 심리를 먹고산다. 전쟁이나 대공황 같은 혼란기일수록 금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제 금값은 하루 9%의 기록적인 폭등세를 연출했다. 그런데 요즘 금값이 묘하다. 뉴욕증시가 트럼프 취임 이후 경기부양과 규제 완화 기대감에 강한 랠리를 펼치건만 금값이 덩달아 오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금이 주식 등 위험자산과 달리 안전자산으로 흔히 불리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