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한국 농업의 성과 세계에 나누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지난 20년간 세계 빈곤국의 ‘식량 원조’에 투입한 돈은 약 1,000억달러(약 114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8억명의 세계 인구가 식량 부족에 처해 있다. 전 세계 아홉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세계 인구 전체를 먹일 수 있을 정도로 식량 생산량이 늘었지만 세계 곳곳에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먹을거리를 바로 공급해주는 식량 원조다. 현재 식량 원조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한 해 약 20억달러 상당의 식량을 세계 각국에 제공한다. 1954년 미국 식량 원조 프로그램의 초기 수혜국 목록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47년 만에 ‘한-유엔세계식량계획(WFP) 원조협정’을 종료해 식량을 원조받는 나라에서 제외됐다.


최근 정부는 식량원조협약(FAC·Food Assistance Convention)에 가입하고 해외 식량 부족 국가에 식량을 제공하기로 했다. FAC는 세계 식량안보 증진과 개도국 대상 식량 지원을 목표로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호주 등 14개 국가가 참여한다. 회원국들은 매년 최소 원조 규모를 서약해 곡물(쌀 포함)이나 현금, 긴급구호 물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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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FAC 가입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세계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과제인 식량안보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논의에 주도적으로 동참하게 됐다.

우리 쌀 산업은 생산과잉과 소비감소로 인한 재고물량 증가, 가격 하락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FAC 가입은 우수한 국산 쌀의 수요처를 다양화하고 해외 원조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쌀로 빈곤국 국민들의 굶주림을 달래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농업인들이 흘린 땀의 가치가 높아질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 통일벼 개발로 쌀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고질적인 보릿고개를 극복했다. 우리나라는 농업 기술 혁신과 투자 증대, 농업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세계에서 유례없이 단기간에 식량자급도 달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의 쌀 생산 정책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고 지금도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다만 식량원조국가로 변모한 우리나라가 식량 원조에서 주의할 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죽은 원조(dead aid)’를 하지 말자”는 담비사 모요 박사의 충고를 잘 새겨야 한다. 식량이 부족한 국가들이 가난과 기아를 극복하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통해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많은 나라에 대한민국은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제2·제3의 통일벼가 탄생할 수 있도록 우리 농업이 이룬 성과와 노하우를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고 나누고자 적극 노력할 것이다. 이번 FAC 가입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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