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헤다 가블러>, 2016년 <갈매기>로 연극배우로서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이혜영은 이번 무대에서 모든 것을 잃고 고립되어버린 한 여자로 돌아온다.
이혜영은 13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표현하려는 메디아는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닌, 그 모든 것에 진정함을 담은, 한치의 의심도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알폴디 연출과 만나, 메디아의 사랑과 고통, 복수,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됐다. (이번 ‘메디아’는)굉장히 열광하거나, 그냥 좋거나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 버림받고 마는 비극적 인물 메디아는 이아손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과 격정적인 배신감, 그리고 자신의 아이마저 죽이게 되는 극한의 분노를 모두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다. 거기에 이방인으로서의 고립감, 그리고 복수를 앞두고 갈팡질팡하는 자아 분열적인 모습은 메디아라는 캐릭터에 복잡성을 더한다.
“‘메디아’를 만난 게 일생 일대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 이혜영은 “메디아는 인생 전체, 즉 여자, 인간, 배우로서 모든 걸 돌아보게 한다”고 각별한 의미를 전했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는 주인공 ‘메디아’가 행복하게 살던 과거의 ‘기억’과 자신을 버린 남편 이아손에 대한 ‘욕망’이 치열하게 교차되며 결국 파국을 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극 <메디아>는 이러한 참극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한 개인의 분노 뿐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 역시 섬뜩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원작에 비해 그 역할이 더욱 확대된 ‘코러스’는 공연 전반에 걸쳐 등장함으로써, 메디아의 심경에 동조하다가도 때로는 그를 비난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고전은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에 의해 동시대적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알폴디 연출이 바라본 ‘메디아’는 “아주 고통스럽고 어두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인간에 출발점을 두고, 우리와 동떨어진 옛날이야기보다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 편의 시 같은 의상으로 사랑받아온 패션계의 거장 진태옥은 <메디아>에서 생애 처음으로 연극 의상에 도전한다. 진태옥 디자이너는 1993년 세계적 패션 컬렉션인 프랑스 파리의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했으며, 우아한 고전미에 실용성을 더한 의상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유니폼을, 2003년 아시아나 항공 유니폼을 디자인한 바 있다.
진태옥은 “패션 쇼 런웨이에서는 ‘나’를 표현하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배우의 캐릭터와 작품의 성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느껴진다”면서 “연극 의상을 통해 배우의 캐릭터, 작품의 성격 등을 드러낼 것이다”고 말했다.
진씨의 손에서 탄생한 ‘메디아’의 의상은 검정 벨벳과, 저지 재질의 붉은 드레스이다. 진씨는 “메디아가 겪는 암흑과 같은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검정 벨벳 의상과 실크 망토를 보여 줄 것이며, 후반 자신의 DNA까지 포기하며 자식까지 죽이는 장면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힘없는 저지 의상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겨울이야기>, <세일즈맨의 죽음>, <햄릿> 등 그간 여러 작품에서 환상의 궁합을 보여준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와 김창기 조명 디자이너가 가세해 세련된 무대 미학을 구현한다.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선보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 연극 ‘메디아’는 2월 24일부터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이혜영, 하동준, 남명렬, 박완규, 손상규, 임영준, 김정은 등이 출연한다. 메디아의 아들로는 아역배우 배강유, 배강민이 나선다. 20세 이상 관람가. (미성년자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