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미·일 골프외교가 부러운 이유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지난주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골프 회동이 화제가 됐다. ‘물 먹는’ 일에 극도로 예민한 직업을 가진데다 골프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든 생각은 한 마디로 ‘한국이 물 먹었네’였다.

두 정상은 18홀 라운드도 모자라 9홀을 추가해 27홀을 돌았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부터 골프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골프를 즐기는 두 사람은 당시 회담 선물로 골프채(드라이버)와 골프용품을 주고받았고 45분으로 예정된 회담 시간이 90분으로 늘어난 것도 그 영향이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아베의 골프 외교를 두고 일본이 관세와 안보 등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트럼프 정부의 환심 사기에 나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미국 우선주의로 각종 차별적 정책을 내놓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착에 일본을 비난하는 국제 여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 견해는 부러움과 질투의 다른 표출로 읽힌다. 골프 라운드가 아니었다면 어떤 나라 정상들 간의 독대가 그리 길게 진행될 수 있을까. 두 정상 모두 골프광이라 해도 그들이 7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기와 시시콜콜한 농담으로 보냈을까. 양국이 국제사회에서 얻을 유무형의 이득에 대해 논의했을 것을 추측해보면 천만금으로도 사지 못할 시간이었다고 봐야 한다. 골프코스에서 격의를 다소나마 따지지 않고 상대방의 성향, 사고나 행동의 방식, 관심 분야 등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 큰 수확일 것이다.

관련기사



골프가 정치·외교의 매개체로 활용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외무상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골프 회동 3년 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된 일화는 유명하다. 이번 골프 회동 뒤 아베 총리의 일본 내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우리의 골프 외교는 요원하기만 한 얘기다. 외교를 펼칠 생각은커녕 표심을 얻기 위해 골프는 금기어 목록의 상단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골프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차츰 변화하는 데 반해 우리 정치권에서만큼은 ‘골프 시계’가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부정청탁 금지법 시행으로 공직자들의 골프에 대한 경계심은 커졌고 공무원 골프 해금이 반짝 화제가 됐으나 엄중한 시국 아래 분위기는 자연스레 냉각됐다. 이번 대선 출마를 선언한 주자들을 봐도 골프와는 인연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리더들이 골프에서 취할 만한 점은 생각보다 많다. 접대나 도박이라는 잿빛 이미지가 부각되지만 골프는 자연, 사색, 산업, 교류, 경쟁과 규칙 준수 등 다양한 빛깔의 스펙트럼을 가졌다. 집무실이나 관저에서는 불가능한 내치·외교적 소통에도 요긴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 미국 골프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읽어볼 만하다. “내게 골프는 아름다움·경쟁·재미를 의미한다. 나는 골프코스에서 즐거움을 찾고 또 많은 거래를 코스에서 성사시켰다.”

박민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