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창업 꽃길 지나니 성장은 흙길'...10곳중 6곳 '3년 고개' 못넘어

■상의 '벤처생태계 2R' 보고서

설립속도 세계 최고 수준

'3만 벤처시대' 열었지만

투자 기반 미비·판로난에

'3년 생존' 기업 38% 불과

창업→M&A 모색→재도전

선순환 투자환경 구축해야

지난 2010년 설립된 벤처기업 T사는 직원 2명으로 시작해 지난해 연 매출 27억원을 올리는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 S대표는 창업 초기 3~4년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서울시로부터 청년창업 지원자금 1,000만원과 기술보증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콘센트에 꽂혀 있는 플러그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면 뺄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을 어렵사리 개발했지만 자금은 금세 바닥나고 판로 개척에도 애를 먹으면서 2013년까지 매출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T사는 악전고투 끝에 인터넷쇼핑몰과 TV홈쇼핑 등 판로를 개척하고 독일에도 수출을 시작하는 등 올해 3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만 환영받는 민간 투자 시장에서 아이디어 상품은 외면당하기 일쑤”라면서 “5년 동안 정말 정신력으로 근근이 버텼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 창업장벽이 크게 낮아졌지만 투자 생태계 미비와 판로난으로 3곳 중 2곳은 설립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투자를 받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힘들고 판로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벤처창업이 매각 등 과실 조기 회수와 재도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5일 발표한 ‘통계로 본 창업 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 따르면 창립 3주년을 넘기는 벤처기업은 38%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크게 뒤지는 생존율이다. 상의는 “지난 10년간 초고속 창업 절차,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3만 벤처시대’가 열리는 등 창업 1라운드는 성공했지만 벤처 투자 생태계 미비, 판로난 등으로 벤처기업의 62%는 3년을 못 버티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우리나라의 창업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은행의 국가별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 소요기간은 4일이다. 스타트업 천국이라는 미국(5.6일)보다도 짧다. 10년 전만 해도 22일이던 창업 절차가 단축되면서 벤처기업 수는 지난해 3만개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10곳 중 6곳 이상의 벤처기업이 다음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중도 탈락하고 있다. ‘창업 꽃길’ 지나니 ‘성장 흙길’이라는 얘기다.


창업 2라운드 진입장벽은 민간 중심 벤처 투자 생태계 미비와 판로난이다. 실제로 민간 벤처 투자를 나타내는 국내 엔젤투자 규모는 2014년 834억원으로 미국(25조원)의 0.3%에 그쳤다. 엔젤투자 규모가 적은 것은 투자금 회수환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 상장에는 6.7년 걸리지만 한국 코스닥 상장에는 평균 13년 걸리고 법인사업자의 80% 이상이 10년 안에 문 닫는 상황에서 13년 후를 기대하며 자금을 대는 투자자를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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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은 기술 역량은 높지만 제조 역량과 마케팅 역량이 낮아 선진국에서는 기술 상용화 가능성만으로 창업한 후 시장 출시를 전후해 대기업 등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조기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인수합병(M&A)을 통한 자금 회수 비중이 유럽에서는 51%에 달하지만 우리는 1.3%에 불과하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민간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들이 더 혁신적이라는 연구가 있다”며 “국내 대기업이나 해외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통해 민간 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성장에 필요한 자원이 지속적으로 공급돼 성공적인 벤처가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국적인 유통망 확보가 어렵고 해외 수출 경험이 부족한 것도 생존율을 높이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65.6%가 국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74.9%는 해외에 수출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꽃피우려면 창업 자체만 촉진하는 방식보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들을 다수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정부 정책방향을 이제 스타트업(start-up)에서 스케일업(scale-up)으로 레벨업할 때”라고 말했다. 판로 개척뿐 아니라 기업공개(IPO) 규제 간소화, M&A 활성화 등 선진적인 민간 투자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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