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배다른 형인 김정남이 피살되면서 한반도 안보 문제가 여론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대통령 탄핵에 쏠렸던 대선판의 무게추가 대북 이슈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여론 전문가들은 일제히 정국 흐름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김정남까지 살해되면서 북한 관련 변수가 정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게 됐다”며 “앞으로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안보정책에 대해 서로 입장이 대척점에 있는 후보들이 맞붙게 된다면 북한 문제는 보다 큰 파급력을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
대선주자들도 이 같은 판세 흐름을 읽고 곧바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첫 일성은 1위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냈다. 그는 15일 오전 여수엑스포 박람회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남 사건이)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잘 대처해나가야 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며 예측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면서 남북관계를 펼쳐나가야 한다”며 탄력적인 대북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했다. 문 전 대표가 선제적으로 북한 문제를 거론한 것은 진보성향의 야권주자에게 따라붙는 ‘안보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진보적인 대통령이 나오면 국방이 불안해진다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문 전 대표가 냉철하게 대북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국방의 첨단화를 다짐하며 국민들의 안보불안 달래기에 나섰다. 이날 대전 국방연구소를 찾은 그는 “국방 연구개발(R&D) 예산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20%까지 늘리겠다”며 첨단 강군 육성 의지를 다졌다. 2위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또 다른 경쟁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도 조만간 김정남 피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범여권 주자들에게는 안보 이슈가 표심에 호소할 기회를 여는 단비가 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북한 정권의 예측 불가능한 도발 가능성을 환기하며 “정부는 국가 안보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잘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가 안보 전반이 위중한 시기에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정말 우려스럽다”며 지지율 우위를 달리는 야권주자들을 공격했다.
정작 안보 이슈의 수혜는 ‘잠룡’이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이어) 추가 핵실험까지 한다면 보수 지지층은 한층 결집할 수 있는데 그 경우 현재의 범여권주자들이 아닌 황 대행으로 보수 표심이 기울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