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민의당 대선 경선주자로 나선 천정배 전 대표는 전북 군산을 찾았다. 천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는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례없는 조선경기 침체로 오는 6월이면 일감이 완전히 바닥나는 군산조선소를 현대중공업 경영진이 잠정 폐쇄하는 방안을 고민하자 이를 두고 압박 발언을 한 것이다. 천 전 대표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근거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이기도 한 지역 균형발전을 거스른다는 점이다.
천 전 대표는 오히려 “가동 잠정중단 결정은 지역 균형발전이 아닌 경제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비판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경제논리가 아닌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목표의 수단으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반(反)기업정서에 편승해 지역 표심을 자극하려는 대권주자들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표를 쫓는 게 정치인의 숙명이지만 문제는 기업 사정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기업의 현안을 악용하려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13면
또 다른 대권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광주 신세계복합쇼핑몰 입점 반대 입장을 밝히며 “미국 아웃렛은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은 또 경영진과 노조의 간극을 절묘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현대중공업 분사(分社) 추진에도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하는 형국이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지주사 체제 전환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정치권이 꾸준히 주장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분사 반대를 주장하는 현대중공업 노조를 만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월 국회에서 이 문제를 보겠다”며 노조 편을 들었다. 강성 노조에 등 떠밀려 그간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격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조선·비조선 부문의 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에서 결정한 경영 사안에 대해 정치권이 입김을 불어넣자 현대중공업은 15일 급기야 사내 소식지를 통해 “더 이상 정치권으로 분사 문제를 끌고 가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대선 분위기에 엮어 야당이 상법 개정으로 추진하는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선임제 도입 등이 의무화되면 외부 세력의 경영 개입이 심화할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10대 그룹 계열사의 한 사외이사는 “이미 강성 노조와 여기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운데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들어온다면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겠느냐”고 걱정했다.
/한재영·조민규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