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 중에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리더십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른 리더들은 ‘소유의 리더십’이 아니라 ‘존재의 리더십’을 추구한다.
2017년 다보스포럼의 화두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다. 2016년 제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다보스포럼에서 제시되었던 ‘시스템 리더십’ 의 연장선상에서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 강조되었다. 불확실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리더의 소통과 책임은 더욱 중요해졌다.
소통과 책임은 리더십 연구 분야에서 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다. 리더의 기본 자질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 각별히 주목받고 있는 걸까? 그동안 리더의 소통과 책임이 간과되어 왔다는 반증은 아닐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에 대한 저항이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의 리더십 관점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리더가 자신의 리더십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오래 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독일 태생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릭 프롬·Erich Fromm, 1900~1980)이 지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란 책이다.
저자는 ‘소유의 삶’을 지양하고 ‘존재의 삶’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오히려 많은 것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유와 존재에 대한 관점을 리더십에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유능한 리더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고 사적인 탐욕에 빠져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리더에게 리더십이란 소유의 대상일까, 아니면 존재의 대상일까? ‘소유의 리더십’과 ‘존재의 리더십’은 공존할 수 없는 걸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발은 화려했지만 끝이 불행했던 리더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공통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보유한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인 탐욕을 채우고자 했다는 점일 것이다. 요컨대 그 리더들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원인은 바로 소유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망각하고 사적인 탐욕을 우선시하는 순간에 리더십은 곧장 오염되고 변질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조직에서 더 높은 직급과 권한, 그리고 더 많은 이득을 갈망한다. 사실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그 대가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마치 약물 중독처럼 끊기 어려운 소유욕은 리더의 존재 가치를 가장 먼저 훼손시킨다.
그렇다면 왜 유능한 리더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망각하고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불감증’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한 리더가 종종 빠지기 쉬운 몇 가지 위험한 불감증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첫째, ‘자신의 책임에 대한 불감증’이다. 소유욕에 불타는 리더는 가장 먼저 초심(初心)을 잃는다. 초심은 ‘존재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바타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유화하고도 이를 합리화하는 등 자기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망각하여 잘못을 저질러도 반성할 줄 모른다.
둘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이다. 욕심이 많은 리더는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과 희생은 관심 밖의 일이 된다. 지나친 소유욕은 이기심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차지할 자리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탐욕적인 리더일수록 더 잔인한 승자독식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리더가 아니라 괴물로 변한 것이다.
셋째, ‘미래의 불행에 대한 불감증’이다. 자신의 탐욕이 몰고 올 미래의 역풍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란 착각이 그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뻔히 불행이 예측되는데도 잘못된 길을 걸어간다.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 뻔뻔하고 비겁해진다. 불행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조여와도 말이다.
넷째, ‘자신의 명예에 대한 불감증’이다. 소유의 리더십을 선택한 리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품위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약자 앞에서는 오만하고 강자 앞에서는 비굴한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굴욕과 비겁함도 감수한다. 나아가 이들은 불법이나 탈법을 일삼기 때문에 늘 반칙의 악취가 진동한다. 이들은 ‘존재의 의미’보다는 ‘소유의 탐미’를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리더가 추구하는 소유에 대한 열망 자체를 통째로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더의 소유욕이 지나치거나 존재의 의미와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적어도 소유와 존재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리더라면 소유의 리더십을 전적으로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유의 리더십을 한 번 맛보게 되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리더의 가치를 중시하는 존재의 리더십이 소유의 리더십에 비해 때때로 무능함과 나약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 소유의 리더십만을 추구하는 리더를 결코 용인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소유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사람만 똑똑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똑해졌다.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손해 보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부하 직원들의 눈밖에 난 리더가 조직에서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소유만 하려는 리더를 따를 만큼 순진한 직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의 리더십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존재의 리더십’은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 즉, 조직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에 집중하면 된다. 물론 어떠한 리더의 삶을 살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바다를 표류하는 사람이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킨다면 구조선이 오기 전에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리더는 자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소유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는 일이 흔해진 요즘, 눈앞의 이득에 집착하기보다는 넓은 시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의 리더십이 더욱 가치를 발할 것이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민대학교 리더십과 코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