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각] 헌법 제123조를 아시나요

한영일 성장기업부 차장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는 헌법 제123조 3항에 있는 조문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헌법에 굳이 명시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공정한 틀 안에서 더불어 공존·번영하는 것이 곧 건강한 시장경제이자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은 단지 법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경제 현실을 보면 정부가 얼마나 헌법 123조에 충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저임금,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속 구인난, 일감 몰아주기. 한국 사회에서 땀 흘리고 있는 중소기업 350만개가 처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중 99.9%를 차지하고 1,600만 근로자 가운데 1,400만명(88%)의 밥줄을 쥐고 있는 이른바 ‘9988’의 주인공이라기에는 초라하고 서글프다.


요즘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중소기업부 신설’ 주장에는 이 같은 업계의 해묵은 설움과 왜곡된 산업 현실이 깃들어 있다. 최근 차기 대통령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공약으로 중소업계의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중소기업부를 만들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1992년 말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중소기업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당선 뒤에 입을 싹 씻었다. 1997년 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대중 후보도 중소기업부 신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역시 취임 이후 ‘식언(食言)’이 되고 말았다.

관련기사



그동안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철마다 내놓은 중소기업부 신설은 그야말로 25년 동안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다. 1996년 2월 산업자원부의 중소기업국이 외청으로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중소기업청은 현재 소관 법령이 20개, 예산은 8조1,000억원(2016년 기준)으로 환경부나 문화체육관광부보다 많다. 하지만 청 단위 조직인 탓에 입법 발의권과 부처 간 행정조정권이 없어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힘들다. 사실상 반쪽짜리 중기정책만 펼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가 중소기업 정책에 손을 놓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 정부 들어서는 중기청장이 청 단위 조직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배석하기 시작했고 국가정책조정회의 등 장관급 협의체에도 참석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중소기업비서관’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설령 다음 정부에서 중소기업부가 만들어진다 해도 자칫 무늬만 중기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일부 기능을 떼고 대신 중기청을 흡수하면서 사실상 명칭만 중기산업부 등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친구와 지인 대부분이 사실상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대권 주자나 정부 관계자들은 중기부 신설 문제를 내 가족의 일처럼 받아들여 건강한 경제, 행복한 삶의 근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hanul@sedaily.com

한영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