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에서 후분양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에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다. ‘강남 집값·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강력한 규제에 나섰던 참여정부였지만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당시 정부가 내린 결론은 ‘공공-단계별 도입, 민간-자율’이다. 민간 부문의 경우 섣부른 후분양제 도입이 공급 위축과 비용의 소비자 전가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의무화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공공 부문 역시 당시 로드맵에는 2011년부터 공정률 80% 이상 후분양을 전면 도입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현재 SH공사 등 일부 공공기관만 제한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초 논의 시기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후분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후분양 도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 여건인데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주택사업의 자금조달 체계가 바뀔 여지가 없다면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신규 주택 공급의 80~90%를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서울 등 기존 대도시 지역의 경우 후분양제 도입이 자칫 주택공급 길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업주체인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로서는 준공 때까지 자체적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급격히 치솟은 전월세가가 논의의 출발점이 된 ‘전월세상한제’ 역시 다르지 않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전월세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 2011년 초 전월세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고 세입자에게 한 차례의 임대차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집주인이 한꺼번에 전세보증금을 올리는 편법 등 부작용만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이후에도 정치권 내에서 전월세상한제 도입 추진이 계속됐지만 2015년 한국주택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결론 역시 ‘도입 불가’였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전월세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세입자의 안정적 주거권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전월세상한제”라며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쳐 포기한 정책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치권의 이 같은 논의가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전셋값을 가파르게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실상 용도 폐기됐던 정책들이 정치권에서 재활용되고 있는 것은 ‘표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책의 실효성과 무관하게 취업난에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유권자에게 어필하려는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월세상한제나 보유세 강화 등은 현재 시장이나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 동떨어진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미 주택시장의 대세 상승기가 끝났다는 진단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전월세상한제 도입 주장은 불필요한 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보유세 과세 강화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상당수 은퇴 노령층이 임대수익 등을 주 소득원으로 삼고 있는 여건에서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늘리면 생계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철 지난 정책의 되풀이보다는 정치권이 보다 건설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건설업체 임원은 “최근 집값 하락 등 주택사업 여건이 악화되면서 건설사들도 분양 외에 임대 등 새로운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라며 “안정적인 임대사업을 위한 정부 등 공공 차원의 새로운 파이낸싱 지원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효율적인 시장 안정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 역시 과도한 규제 일변도의 인위적 시장 개입보다는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 등 계층별 수요에 맞는 다양한 임대주택의 꾸준한 공급이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전월세상한제만 하더라도 임대인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라며 “임차인뿐 아니라 집주인을 시장에 참여시키기 위한 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두환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