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변화들도 무명 영화감독이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찾아온 변화만큼 놀라운 수준은 아니었다. 인도 출신으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식스센스’를 통해 단숨에 할리우드의 21세기를 이끌어갈 차세대 유망주라는 거창한 평가를 받게 만들었다.
데뷔작은 아니지만 사실상 메이저 데뷔영화나 다름없던 ‘식스센스’가 거둔 놀라운 성과가 오히려 독이 된 것이었을까? ‘식스센스’ 이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행보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다이하드3’의 명콤비였던 브루스 윌리스와 사무엘 잭슨이 정반대의 관계로 만난 ‘언브레이커블’을 비롯해 멜 깁슨이 출연한 ‘싸인’ 등은 지나치게 반전에만 집착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식스센스’와 비교를 당했다.
심지어 2010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를 휩쓴 ‘라스트 에어벤더’의 참혹한 실패 이후 ‘애프터 어스’ 등 연이어 망작을 만들어내며 감독으로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지 않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다시 돌아왔다. 오는 2월 22일 개봉을 앞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23 아이덴티티(Split)’는 ‘식스센스’의 대성공 이후 반전에 지나치게 집착해오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반전에 대한 집착을 버린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23 아이덴티티’의 원제는 ‘갈라지다’, ‘분열하다’는 의미를 지니는 ‘Split’이지만, 한국에서는 보다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제목으로 ‘23 아이덴티티’라는 제목을 사용한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주인공이 무려 23개의 인격을 지닌 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 즉 일명 다중인격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23 아이덴티티’의 이야기는 사실 별 것이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제임스 맥어보이는 세 명의 10대 소녀를 납치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위치불명의 아지트에 감금한다. 소녀들 중 두 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다 납치범에 의해 격리되고,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는 납치범이 다중인격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납치범의 인격들을 이용해 탈출하려고 한다.
사실 ‘23 아이덴티티’에서 가장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납치범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격이자 인간을 초월한 인격인 ‘비스트(Beast)’의 존재를 언급하고, 관객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식스센스’부터 반전(反轉)을 즐겨쓰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23 아이덴티티’에 대단한 반전이 필시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23 아이덴티티’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반전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23 아이덴티티’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먼저 23개의 인격(영화 상에서는 8개의 인격만 보여진다)을 연기하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놀라운 연기다. 목소리 톤부터 손끝의 섬세한 행동 하나까지 제임스 맥어보이는 디테일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캐릭터를 분석해 다중인격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23 아이덴티티’에서는 다중인격과 제임스 맥어보이, 그리고 ‘비스트’의 존재감조차 사실 ‘맥거핀(Macguffin)’에 가깝다. 무언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진짜 이야기는 제임스 맥어보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보여지는 것이 바로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의 성장이다. ‘식스센스’가 귀신을 본다는 소년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심리치료사인 브루스 윌리스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말이다.
‘23 아이덴티티’는 ‘식스센스’의 엄청난 평가와 성공 이후 그 그늘에서 20년 가까이 벗어나지 못하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드디어 ‘식스센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식스센스’로 충격을 받은 이후 계속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갈망해오던 것이 바로 이런 영화였을 것이다. 반전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이런 기괴하게 뒤틀린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 말이다. 2월 22일 개봉.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