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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자투표 의무화, 결의요건 완화와 병행해야

권종호 한국기업법학회회장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정치권에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조성된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재벌규제에 초점을 맞춘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 후 7개월간 쏟아진 의원발의 법안은 4,258건으로 그 중 규제 신설·강화법안은 393건이다. 근무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2.4건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된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이처럼 규제 일변도로 가도 좋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국 불안, 낮은 경제 성장률, 트럼프 리스크라는 삼각파도를 만난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IMF 외환위기 직전보다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규제보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경영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상황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위험을 감수한 공격적인 경영이 요구되는데, 규제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 전자투표제도·다중대표소송제도 등 그간 논란이 됐던 경제민주화 관련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상법개정안 중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 집중투표제도, 소액주주 추천 사외이사선임제도, 근로자대표 사외이사선임제도 등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 맞지 않거나 기업에 부담만 주고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제도가 적지 않다. 이런 제도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제도들인데 기업지배구조는 원래 법률로 강제할 성질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은 기업지배구조를 지배주주나 경영자의 전횡에 대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감시·감독체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지배구조 강화는 경영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읽히면서 재계의 극한 반발을 불러오고,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밀어붙이면서 경영자와 주주 나아가서는 정치권의 격한 대립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기업지배구조가 지향하는 목표는 “주주의 공동이익 실현”이나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지배구조의 선택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그 이유를 공시하도록 해 시장에서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에 관해 미국과 영국이 일찍부터 채택하고 있고 최근 일본이 도입한 “준수하거나 설명하라(comply or explain)”는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전자투표 의무화의 경우 지배구조에 대한 접근방법과는 달리해야 한다. 주주가 원하면 언제든지 전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전자투표의 의무화다. 그런데 재계는 전자투표를 강제하면 해킹 등 보완 문제가 우려되고 악성루머 공격시 투표쏠림 현상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해킹 문제는 전자투표를 강제하지 않아도 우려되는 것이고 투표쏠림 현상은 주주총회 현장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총회 불참 주주를 위한 의결권 행사제도에는 전자투표 외에도 서면투표와 위임장 권유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들도 경영자가 결심해야만 주주들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투표 의무화는 총회불참 주주에게 의결권행사 기회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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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재계는 전자투표 의무화를 반대하기보다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2018년 1월1일부터 폐지되는 섀도보팅 제도와 관련해 총회 결의요건 완화를 요구함이 옳다. 기업의 요청으로 예탁결제원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섀도보팅 제도가 폐지되면 지배주주의 부재, 소액주주의 총회불참 등으로 전체 상장회사의 15% 정도는 결의성립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회사의 경우 결의성립을 위해서는 결의성립요건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전자투표 의무화는 추진은 하되 결의성립요건의 완화와 병행함으로써 총회 불참주주에게는 의결권행사기회를 제공하고, 총회 결의성립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의결권행사 독려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결의 불성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황하지만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은 기업들이 내심 싫어할 제도도 국가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는 기업을 설득해서라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이 길만이 기업이 살고 경제단체가 살고 우리나라 경제가 사는 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특정 지배구조의 강요에 반대할 수 있고 규제 일변도의 경제민주화법 소나기도 피할 수 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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