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공항 착륙 전 왼쪽 창을 보면 다소 생소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지만 산업단지를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활주로 경계 한 쪽에 맞닿아 있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절반가량 되는 면적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물들 뒤로 비행기 꼬리만 나와 있는 곳도 있어 대부분의 사람은 비행기 격납고 정도로 생각한다. 지역주민 역시 실체를 안 지는 얼마 안 됐다. 입구에 테크센터라는 간판을 단 지는 불과 10여 년 전. 그 전까지만 해도 ‘생활공장’으로 불렸다. 외부에 실체를 공개한 것도 불과 5년 전이다.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산업 요람인 대한항공(003490) 항공우주산업본부 테크센터 이야기다.
지난 17일 찾은 테크센터는 왜 그동안 철저히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실감케 했다. 입구를 지나 활주로 쪽에 맞닿아 있는 군용기 사업 공장에 들어서자 전투기 40여대가 벌거벗은 채 정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트랜스포머 1편에 나왔던 미군 해병대 헬기 ‘CH53’과 터미네이터에 등장했던 전투기 ‘A-10’도 눈에 띄었다. 날개를 떼 내고 페인트도 지운 ‘A-10’ 본체 위에서는 뼈대 강도를 측정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현수 군용기 사업관리팀 부장은 “테크센터의 군용기 정비센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라면서 “한국군이 운용하는 모든 비행기와 아시아 지역에서 운용하는 미군 비행기는 전부 이곳에서 점검 및 개량 작업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순히 점검 및 개량 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500MD 헬기는 테크센터에서 만들어졌다. 수년 전부터는 무인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장 한 쪽에는 조종석 창문을 없앤 500MD 두 대가 자리했다.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500MD의 무인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500MD 무인화가 완료되면 서해 최북단에 실전 배치, 전쟁 발발 시 연평도 해안 포격의 진원지인 북한 개머리 해안을 선제타격한다. 사단급에서 정찰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형 무인정찰기는 개발을 끝내고 올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한다.
테크센터가 최근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민간 항공기 부품 제작 분야다. 군용기 사업 공장 왼편에 자리한 복합재 공장은 전체 테크센터 부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복합재 2공장 안에 들어서자 공장 내부에서도 자동문으로 분리된 공간이 보였다. 취재진은 물론 직원들도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2분가량 열어준 문 안쪽에서는 항공기의 꼬리 부분인 ‘애프터 보디’를 복합재로 겹겹이 쌓는 ‘레이업’ 공정이 진행 중이었다. 보잉사 주력인 B787-9에 탑재될 부품이다. ‘드림라이너(꿈의 항공기)’로 불리는 B787은 기체의 50% 이상을 탄소복합재로 만들어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차세대 항공기다. 항공사 수익과 직결되는 연료 효율이 다른 기종보다 20% 높다. 대한항공은 이달 말 최신 모델인 B787-91호기를 시작으로 총 10대를 차례로 들여올 예정이다. 여기에는 애프터 보디뿐 아니라 날개 구조물인 ‘레이키드 윙팁’, 플랩 서포트 페어링 등 5가지 부품이 부산 테크센터에서 제작돼 탑재된다. 2005년 항공기 국제공동개발사업에 뛰어든 대한항공 테크센터가 차세대 항공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류화수 민항기제조공장 부장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항공기 구조물은 개발 및 인증은 물론 항공사에 인도한 뒤 유지·보수까지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평균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인력 2,700여명이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다.
항공우주산업본부는 연평균 20% 성장을 지속하며 2015년 매출 1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1조269억원을 기록해 대한항공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했다. 이재춘 사업계획팀장은 “무인기 분야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오는 2020년에는 2조원, 2025년에는 3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해=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