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유전자 가위·배아 연구 “금지대상 외엔 다 허용을”

기술발전으로 속도전 갈수록 중요한데

몇 가지 찔끔 허용 생명윤리법에 발목

연구 허용해온 美 연방예산지원 채비

글로벌 스탠더드 맞게 네거티브 규제로

한 연구원이 ‘유전자 가위’의 기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위로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고 있다. /사진제공=네이처한 연구원이 ‘유전자 가위’의 기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위로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고 있다. /사진제공=네이처


희귀난치병 치료 및 작물·가축개량 등 분야에서 ‘유전자 가위’ 혁명의 파고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정 유전자 부위를 정확하게 잘라내 그 기능을 알아내는 데 종전에는 수개월~수년이 걸렸지만 3~3.5세대 유전자 가위(크리스퍼 Cas9 또는 Cpf1)를 이용할 경우 하루 정도면, 그것도 수십 달러의 비용으로 가능해져서다. 연구인력·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속도전과 아이디어 싸움에서 밀리면 설 자리를 잃기기 십상이다.


◇美,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에 예산지원 채비

주요 선진국과 중국이 혁명의 물결에 올라타 관련 시장을 선점·재편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을 가진 연구진과 바이오 벤처기업이 있는데도 시대에 뒤떨어진 생명윤리법 등의 규제에 발이 묶여 속도전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 연구대상 질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미국은 대학·병원 등 연구자가 속한 기관 심사위원회(IRB)의 승인만 받으면 사람의 난자·정자가 수정돼 만들어지는 배아에 유전자 가위 기술 등을 이용해 희귀난치병 등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가 연방정부 예산을 지원하려는 채비를 사실상 마쳤다. 영국·스웨덴·일본 연구자들은 정부의 승인을 받긴 하지만 배아를 이용해 불임 관련 유전자 기능 연구 등을 폭넓게 수행하고 있다. 중국도 불임치료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배아의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 유전병 등을 치료하는 연구가 활발하고 일부는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국내 연구자는 21개 질환만 연구하라고?

우리나라엔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과 함께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양대 원천기술을 가진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바이오 벤처기업 툴젠이 있다. 인간 배양세포 실험을 통해 문제가 있는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 치료 효과를 내는 ‘유전자 교정’이 이뤄졌음을 입증하고 2012년 10월 하버드대-MIT팀보다 먼저 특허를 출원했다. 지난해 국내 특허를 받았고 호주에선 등록을 앞두고 있다.


국내외 연구진과 공동으로 희귀난치병 치료제와 부가가치를 높인 가축·작물 등을 잇따라 개발하는 성과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혈우병·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황반변성 등 희귀난치병 치료제, 과도한 근육 발달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없애 단백질 함량은 늘리고 지방 함량은 낮춘 ‘슈퍼 근육 돼지’, 올리브유의 주성분으로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 함량을 2배 가까이 늘린 콩(대두)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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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등과 달리 치료제엔 생명윤리법, 개량 작물엔 유전자변형작물(GMO) 규제를 들이대려는 정부 때문에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보존기간 5년이 지난 동결 잔여배아를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질환에 난치병인 에이즈와 3개 희귀병(부신백질이영양증, 이염성백질이영양증, 크라베병)을 추가하는 생명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연구 가능한 질환을 심근경색증, 간경화, 파킨슨병,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시신경 손상, 당뇨병, 뇌성마비, 척수손상, 백혈병 등 17개에서 21개로 늘리는 정도다.

< 잔여배아 연구 허용 희귀ㆍ난치병>

구분 현행(17개) 추가(4개)
희귀병
(10→13개)
골연골 형성이상,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뇌성마비, 다발경화증, 무형성빈혈, 백혈병, 선천성면역결핍증, 유전성 운동실조, 척수손상, 헌팅턴병 부신백질이영양증, 이염성백질이영양증, 크라베병
난치병
(7→8개)
간경화, 뇌졸중, 당뇨병, 시신경 손상, 심근경색증,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자료: 보건복지부

◇“기관 IRB·국가생명윤리심의위 이중규제 개선을”

이에 대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글로벌 유전자교정 기술동향 보고서’에서 “생명윤리법을 포함한 기존 규제는 유전자교정 기술이 활발해지기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착오적”이라며 규제개혁과 정책의 투명성을 서둘러 확립할 것을 촉구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질환만도 6,000가지나 되는데 연구 허용 질환 몇 개를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는 매우 불합리하다”며 “생명윤리법을 개정해 금지대상 질환 등 외에는 연구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비동결 배아 연구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형민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난자·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대상 질환, 동결·비동결 여부를 제한하지 않는 대신 연구의 목표·수행방법 등이 생명윤리에 저촉되지 않는지, 연구의 투명성·공개성이 확보됐는지, 기관이 엄정하게 관리감독을 했는지를 중요시한다”며 “우리도 관련 규제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IRB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이중규제를 폐지, IRB로 단일화하는 대신 연구과정에 법령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강하게 처벌해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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