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최순실 게이트후 되레 기금 법안 급증..."재산권 침해" 목소리

[재벌개혁 외치면서 기업돈 걷겠다는 국회]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민간기업 등서 총 1조 조성

여야 '준조세 금지법' 공약과 모순된 행보 보여

"지금도 16조 달하는데..." 부담 한층 가중 우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여야가 갈 길 바쁜 기업에 사실상의 준조세 부담을 지우는 기금 조성 관련 법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면서도 기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서면서 16조원에 달하는 기업의 준조세 부담은 한층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르’ 의혹에 입법 가속화…“입법 만능주의” 비판도=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촉발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모금 의혹이다.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권력을 등에 업고 53개 대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을 출연받은 뒤 각종 이권을 챙기려 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모금 의혹이 정권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초대형 이슈로 부상하면서 기업들의 기금 조성을 위한 ‘합법적 통로’인 국회 입법은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 결과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기금 조성 관련 법안 7개 가운데 1개(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를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모두 관련 의혹이 처음 보도된 지난해 7월 이후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법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피해 지원을 위해 민간기업과 농협 등이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의 기금을 조성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결국 기업들에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무슨 내용이든 법만 통과시키면 아무 상관없다’는 주장은 입법 만능주의의 오류이자 법치주의를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외치는 국회의원들이 기업들의 자금을 활용해 기금을 만드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경유착 근절방안 토론회에서 추미애(오른쪽 세번째) 민주당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재벌개혁을 외치는 국회의원들이 기업들의 자금을 활용해 기금을 만드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경유착 근절방안 토론회에서 추미애(오른쪽 세번째) 민주당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시장경제 근간 사유재산권 침해…주주 이익도 훼손”=재계에서는 우선 기업 기금 조성을 위해 각종 명목을 갖다 붙인 법안들이 시장경제질서의 토대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여야가 통과시킨 농어촌상생협력기금법의 경우 한중 FTA로 인한 피해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합의가 존재한다면 국회 동의를 거쳐 정부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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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은 일정한 사유와 범위를 정해 강제로 기금을 납부하도록 한 법안과 기업의 자발적인 의지에 기대는 법안이 뒤섞여 있다.

전자는 물론 후자 역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재계 입장이다.

◇여야 ‘준조세 금지법’ 공약…“앞뒤 안 맞는 모순 행보”=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기업들에 사실상의 준조세 부담을 안기는 입법을 쏟아내는 한편으로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며 준조세 금지법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에 따르면 2012년 13조여원이었던 준조세는 2015년 16조4,000억원대까지 치솟은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정경유착을 뿌리 뽑기 위해 공직자가 기업에 기부 요청을 할 경우 처벌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명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공직자가 민간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기부금 출연이나 인사청탁 등 부정한 청탁을 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며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민간에 준조세 출연을 강요하면 경고 없이 곧바로 직위해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4대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대기업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오 교수는 “여러 명목의 흩어져 있는 기금을 통폐합하고 법률에 부과 요건을 명확히 규정해 준조세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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