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김정남 피습 이후에도 의식 멀쩡...형 독극물 사용에 무게

CCTV 공개에도 김정남 암살 커지는 '수수께끼'

두여성 2.33초 만에 범행 마무리

金 의료센터까지 스스로 걸어가

내일 부검결과 발표 예정이지만

신물질 사용땐 확인 어려울수도

암살주도 男 용의자 4명 北 도주

리정철은 범행 부인...사건 미궁

20일 공개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폐쇄회로TV(CCTV) 영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무인발권기로 이동하자(1번),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알려진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이 다른 방향에서 김정남에게 접근한 후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분사했다(2·3번). 김정남은 공항 관계자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4번) 공항 내 의료센터로 이동했으나(5번), 의료센터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다(6번).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20일 공개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폐쇄회로TV(CCTV) 영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무인발권기로 이동하자(1번),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알려진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이 다른 방향에서 김정남에게 접근한 후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분사했다(2·3번). 김정남은 공항 관계자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4번) 공항 내 의료센터로 이동했으나(5번), 의료센터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다(6번).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정남 암살 현장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통해 두 명의 외국인 여성이 2.33초 만에 범행을 마무리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이 20일 공개됐다. 하지만 범죄 현장의 생생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암살을 주도한 4명의 남성 용의자들은 모두 북한으로 도주한데다 유일하게 체포된 북한 용의자인 리정철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북한 측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북한 배후설을 강력 부인하는 등 북한과 말레이 양국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일본 후지TV가 공개한 CCTV 영상에서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로 체포된 시티 아이샤(인도네시아 국적)와 도안티흐엉(베트남 국적)은 KLIA2 무인발권기 앞에 있던 김정남을 사이에 두고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 ‘LOL 여성’으로 알려진 도안티흐엉이 달려와 머리를 두 팔로 감쌌으며 시티로 보이는 여성이 흰색 헝겊으로 보이는 물체로 김정남의 얼굴을 가려 독극물 공격을 가했다. 두 여성은 2.33초 만에 범행을 마무리하고 김정남의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김정남은 공항 의료센터로 이동할 때까지 비교적 멀쩡하게 걸어갔으나 의료센터에 도착한 뒤 쓰러졌다.



당시 정황을 공개한 이 영상을 바탕으로 암살에 최적화된 신형 독극물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이 두 여성 용의자에게 피습을 당한 후에도 비교적 정상적인 걸음으로 의료센터를 향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북한 대학에서 과학과 약학을 전공한 독극물 전문가인 리정철과의 연관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독극물에 노출된 당사자도 초기에는 중독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빠른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물질의 종류를 특정할 수 없어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말레이 보건부는 22일 시신 부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만일 김정남 암살에 신물질이 사용됐을 경우 부검에서 무슨 물질인지 확인이 어려우며 배후를 특정하기도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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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티와 도안티흐엉에게 암살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이 이미 평양으로 도주한 후여서 사건 배후가 북한임을 밝히기는 한층 어려워진 상태다. 지지통신은 이들이 사건이 발생한 위치에서 약 50m 떨어진 식당에서 범행을 지켜본 후 그 즉시 출국했다고 이날 전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범행 나흘 만인 17일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은 이들이 1만6,000㎞나 되는 비행길을 도피 경로로 감수한 목적은 “김정남을 보호해왔던 중국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 공작원의 행각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이들의 신병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말레이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의 리정철은 “암살에 관여하지 않았고 김정남을 죽이지 않았다”며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여성 용의자들은 장난 영상을 촬영하는 줄 알았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어 수사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현지 매체인 동방일보에 따르면 말레이 수사당국은 15일과 16일 각각 체포한 두 여성 용의자의 구금을 연장할지, 기소를 진행할지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곧바로 기소하지 않고 구금을 연장해 추가로 조사할 여지를 줬다는 것은 수사당국이 아직 이들의 가담 정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들의 구금 기간은 22일까지다.

이런 가운데 북측은 말레이시아를 겨냥해 날 선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초치된 강철 주말레이 북한 대사는 말레이 정부와의 비공식 회담 이후 기자들에게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와 결탁해 북한이 배후라고 한다”며 북한 배후설이 거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레이 외교부는 앞서 “적대세력과 결탁했다”며 부검 결과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강 대사를 초치하는 한편 평양주재 자국 대사도 본국으로 소환하는 초강수로 북한에 항의를 표시했다. 나집 라작 말레이 총리도 20일 경찰 수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며 북한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나집 총리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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