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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심’ 인생연기 정우 “내가 조금 더 참으면 관객을 울컥하게 만들 수 있어”

2010년 제47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가장 의외라면 의외였던 수상결과는 첫 번째 수상이었던 신인남우상 부문부터 시작됐다.

‘포화 속으로’를 통해 배우로 첫 발을 디딘 인기 아이돌 빅뱅의 최승현(T.O.P), 2010년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엉뚱한 리듬으로 관객들을 웃긴 신예 송새벽, ‘파괴된 사나이’를 통해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인 엄기준 등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겨우 전국 10만의 관객을 동원한 독립영화 ‘바람’의 주인공 정우가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것이다.

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





이후 정우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영화 ‘쎄시봉’과 ‘히말라야’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인기스타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정우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작은 2010년도에 그에게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안겨준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우의 대표작이 바뀔 것 같다. ‘바람’에서 2월 15일 개봉한 김태윤 감독의 영화 ‘재심’으로 말이다.

영화 ‘재심’은 2000년 벌어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살인사건의 목격자였지만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해 살인범이라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서 10년 동안 억울하게 징역을 산 ‘현우’(강하늘 분)와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해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현우를 도와주는 변호사 준영(정우 분)의 투쟁기를 그려낸다.

“솔직히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는 실화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다른 시나리오들처럼 평범하게 읽으면서 감정이 좋은 시나리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사실 실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깜짝 놀랐죠. 이런 일이 진짜로 벌어졌었다고?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재심’에서 정우는 신도시 부동산과 관련한 대규모의 소송에서 패소해 재산도 잃고 가족도 잃을 위기에 처한 변호사 ‘준영’을 연기한다. ‘준영’은 거대 로펌에 재직중인 친구 ‘창환’(이동휘 분)에게 부탁해 거대 로펌에 들어가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고, 거대 로펌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로펌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재심 사건에 매달리게 된다.

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


“‘응답하라 1994’에서 의사로 나온다고는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의사 가운만 입어봤고, 이런 전문직을 연기한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그렇다고 변호사라는 직업이니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죠. 그저 직업이 변호사인 직장인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섰어요. 실제로 ‘준영’의 실존모델인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을 때도 이 분이 법조인이라는 느낌을 특별히 받지는 못했어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할 때는 예리한 눈빛이 번뜩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편안하고 유쾌하신 분이더라고요.”


“영화의 엔딩에 대해 아쉽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근데 전 정말 엔딩이 마음에 들어요. 다만 배우로서 조금 아쉽다고 하면 이왕 변호사 연기를 하게 됐는데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장면이 한 두 장면 정도 있었다면 재밌었겠다는 생각 정도? 그리고 변호사 연기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입에 익숙하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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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배우가 특히 주의해야할 것은 지나치게 감정이 격앙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정우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벌써 ‘쎄시봉’과 ‘히말라야’에 이어 ‘재심’까지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만 세 편 연속으로 출연하다보니 연기에 있어 적정한 지점을 찾는 것이 제법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재심’에서 이런 정우의 연기가 단연 돋보이는 대목은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적셨을 바로 그 장면이다. 현우(강하늘 분)가 봉투에 담은 돈을 ‘전재산’이라며 정우에게 사건 수임료라고 건네고, 이후 준영이 재심사건을 포기하는 댓가로 파트너 변호사 직을 제안하는 로펌 대표(이경영 분)에게 “대표님은 수임료로 얼마까지 받아보셨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이 순간 정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모습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저격한다.

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


“그때 하늘이가 준 봉투안에 담겨 있던 금액이 17만 3천원이었어요. 시나리오에서도 그 대사를 읽으면서 정말 멋진 대사라고 생각은 했는데, 막상 제가 연기를 하며 입으로 내뱉었을 때 오글거리지 않게 연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연기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조금 더 참으면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꾹 감정을 눌렀죠.”

정우는 충무로에서도 정말 연기를 잘 한다는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과 같은 선배 배우들에 비하면 사실 그렇게 연기를 잘 한다는 인상을 받기는 힘든 배우다. 정우의 연기에는 그렇게 단단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것 같고, 홀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정우의 연기는 편안하게 관객의 마음에 녹아드는 재능이 있다. 홀로 카리스마있게 극을 장악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편안하면서도 철저히 캐릭터를 연구하고 준비하면서 자신이 먼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다음에 그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영화 ‘재심’ 정우 / 사진제공 = 오퍼스픽쳐스


선배 배우들의 연기가 강렬한 몰입이었다면 정우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정우의 부드러운 연기가 ‘재심’을 실화영화라는 강박에서 끌어내 어느새 눈물이 또르르 흐르게 하는 진한 감성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준영이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친구가 아니에요. 오로지 돈과 명예를 위해 인생역전하려고 하는 속물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나오잖아요. 원래 공부를 못했는데 생활기록부에 준법정신이 미약하다는 말이 적힌 것을 보고 인생역전하려고 사법고시 공부 시작했다고. 그래도 그런 모습들에서 남자다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생활기록부에 적힌 말에 화가 나서 인생역전을 꿈꾸겠다는 포부가 있으면 뭘 못하겠어요? ‘준영’이라는 변호사가 아니라 저는 ‘준영’이가 이런 친구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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