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당겨진 대선 시계에 맞춰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유통 업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졌던 유통 산업 규제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통 업계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예정보다 앞당겨 치러지는 탓에 각 진영에서 쏟아내는 정책의 세련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 권익과 현실을 무시한, 규제를 위한 규제”라며 항변하고 있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 업계 규제 관련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만 2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각 정당들도 앞다퉈 ‘상생’을 이유로 유통규제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대형 유통 업체들의 무분별한 확대에 제동을 걸고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등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영업일이나 시간에 제한을 두는 내용이 골자다. 전문가들과 유통 업계는 이 같은 방안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6일 자유한국당이 ‘골목상권 살리기 방안’으로 편의점 간 영업 거리제한 기준을 마련하고 현재 24시간인 영업을 심야(자정~오전6시)에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편의점 간 영업 거리제한 기준은 이미 한 번 만들었다가 사라진 규제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간 영업 거리를 250m로 제한한 바 있지만 2014년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데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없던 일로 되돌린 제도다. 단 편의점 업계는 매장별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250m 룰’을 운영하고 있다. 심야영업 여부 역시 이미 점주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만드나 마나 한 규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편의점뿐만이 아니라 마트와 백화점·면세점을 막론하고 유통 산업 규제 방안은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쏟아져 올 한 해 유통 업계의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먼저 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대형마트 영업 종료 시간을 자정에서 오후10시로 두 시간 앞당기고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일요일에서 매주 일요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기존에는 영업시간 규제가 없었던 백화점과 시내면세점은 오후8시부터 다음날 오전9시까지 영업이 제한되고 백화점은 매주 1회, 시내면세점은 매월 1회 문을 닫아야 한다. 설날과 추석 당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농협하나로마트처럼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55% 이상인 대규모 점포도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받도록 했다.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인 대형 상점시설 입지 허가 기준에 대한 규제도 한층 강도를 높였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개점할 때 상권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도시계획 단계부터 대규모 매장 용도로 허용한 지역에만 쇼핑몰을 출점시키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주말영업을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난다는 가설은 이미 틀렸음이 검증됐다”며 “기존의 영업시간 규제만으로도 많은 고객이 불편을 겪고 있는데 마트뿐 아니라 백화점과 면세점까지 영업시간과 영업일수를 규제할 경우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방문에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