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비운의 베트남 랜드마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에펠탑, 부르즈 할리파. 각각 뉴욕과 파리, 두바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들이다. 도시를 넘어 일국의 상징물 같은 명소인 이곳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 정도의 마력이 있다. 가봤더니 별거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가고도 보지 않으면 뭔가 놓쳤다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해외 랜드마크 가운데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이 더러 있다. 최고층 빌딩건축에 강한 우리 건설업체가 동남아와 중동에 지은 마천루가 그것이다. 삼성물산과 쌍용건설이 지은 쿠알라룸푸르 KLCC타워는 1998년 준공할 당시 시카고 시어스타워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인정받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 역시 우리 손으로 지은 마천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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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것은 아예 이름부터 랜드마크다. 경남기업이 10억달러를 투입해 하노이 신시가지에 2011년 완공한 랜드마크72는 지상 72층의 베트남 최고층 빌딩으로 하노이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빌딩은 비운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이른바 ‘정관계 로비 리스트’를 남기고 자살한 고(故) 성완종 회장은 랜드마크72를 필생의 업으로 여겼다. 72층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는 그는 자금난에 봉착했어도 매각을 주저해 화를 자초했다. 자금을 대준 국내 채권단 역시 생채기가 컸다. 헐값에 부실채권을 처리한데다 대출과 관련한 특혜의혹에 휩쓸렸다.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초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경남기업이 빌딩 매각과정에서 친지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미 연방법원에 기소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랜드마크72 인수 회사에 자금을 대준 미래에셋그룹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출금을 기초자산으로 한 ABS를 사모펀드인데도 공모펀드처럼 팔다 금융당국에 적발돼 과징금 최고한도까지 가는 중징계 처분을 앞두고 있다. 랜드마크72를 무심코 지나가는 베트남 국민들은 이런 기구한 사연을 알는지 모르겠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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