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3일 금리를 8개월 째 동결(1.25%)하기로 결정한 데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내외 상황을 반영했다. 이는 통화정책방향을 정하는 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통화위원들의 분위기에서도 나왔다. 이 총재와 위원들은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밝은 표정을 보이며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큰 이견이 없었다는 점을 내비쳤다. 금리동결은 현재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금리를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금리를 유지한 채 금융안정을 지키자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경제가 소위 3가지 딜레마(트릴레마·trillemma)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두고 이 총재는 지난 1월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 신년사에서 “우리 안팎의 여건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로도 부족해 ‘초(超)불확실성 시대’라는 용어가 생겨났듯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선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윤곽이 아직 선명하지 않은 데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외화가 유출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새로 출범한 미국 행정부는 시작부터 국가안보보좌관(NSC)가 사임하면서 국내적인 홍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감세 정책 등을 담은 세법개정안의 발표 시기가 늦춰지면서 미국 경기 회복의 속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주 재닛 얠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상원에서 3월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발언을 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판단해 3월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올해 총 3회(2·4분기와 4·4분기) 금리를 높일 가능성도 나온다. 우리나라 기준금리(1.25%)를 감안할 때 미국(0.5~0.75%)이 3회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금리차이가 역전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금리 차이에 따른 외화 유출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금리를 인하할 여건도 안된다. 22일 한은이 발표한 지난해 가계신용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1,34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정부의 대출심사 강화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지자 가계들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2금융권에서 빌리는 돈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섰다간 가계부채 증가세를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다.
금리 인상 역시 어렵다. 한은이 진단한 바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들의 이자상환 부담액이 9조원가량 늘어난다. 금리를 인상했다간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빚에 눌려 소비 여력이 떨어진 국민들이 지갑을 더 닫게 해 민간소비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는 회복하고 있는 우리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다. 우리 수출이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과 일본, 독일, 한국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때는 그 파장을 예단하기 어렵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미국 신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과 미 연준의 통화정책, 국내 가계부채 문제 등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도, 반대로 인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