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원제안 ‘shrill’은 페미니스트 인사를 폄하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날카로운’,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 등을 소리 높이 외치는’ 이라는 뜻의 형용사인데 말이다. 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땍땍거린다’ 라는 표현이 이쯤 해당 된다. 여성의 자기 주장에 대한 정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책은 여성 혐오와 비만혐오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고착됐는지를 통해 ‘여성의 몸’에 관해 정면으로 다룬다. 페미니즘 의제에서 몸(외모)은 빼놓을 수 없다. 직접적으로는 여성혐오의 주된 방식이 여성의 외모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주로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여성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거의 모든 여성이 강박적으로 외모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한 결과다.
여성에서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는 뚱뚱한 여성을 역겹다 여기고,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매도하고, 웃음거리로 삼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뚱뚱한 사람들이 체중 조절에 실패한 원인이 게으르고 나태한 탓이건, 문화적·의학적 요인 탓이건 간에 “타인의 몸매는 전혀 다른 사람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건강을 비롯해 그 어떤 이유에서든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저에는 살을 뺀 뒤에라야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비만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뚱뚱한 사람의 인간성을 배제한 채 정신적 수치심을 가하는 윤리적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 있기는 매한가지다.
저자가 겪은 여성혐오와 그에 맞선 에피소드들은 상처투성이이지만 풍자와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화려한 입담과 결합해 소설책을 읽는 듯 재미있다. 또 비만, 낙태 등 고통스러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이야기함으로써 ‘날씬해도 나’, ‘뚱뚱해도 나’라는 주장과 여성 혐오의 근원이 되는 의제들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했다.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