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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싱글라이더’ 이병헌의 깨달음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22일 개봉한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는 바쁜 우리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이병헌은 “분명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저에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문득 문득 살면서 뒤돌아보게 되고, 주변을 보게 되지 않을까요? 난 어떻게 살고 있었지? 란 생각과 함께. 앞만 보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생각에 잠긴 채)서보겠죠.”

배우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를 통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리석은 삶일 수 있다’  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배우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를 통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리석은 삶일 수 있다’ 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개봉 후 누적 관객수 20만을 넘어선 영화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던 가장이 부실 채권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이병헌은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 뒤늦게 후회하는 한 남자 강재훈으로 열연했다.

배우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는 연기 인생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읽고 나서도 긴 시간 계속 멍해진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더욱이 “휴먼 감성 드라마 ‘싱글라이더’는 인간의 디테일한 감성이 살아있었고, 사람들이 놓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주로 액션 장르의 작품을 연기해왔어요. 범죄, 비리, 오락액션 시나리오가 홍수처럼 쏟아지다보니, 그 장르 내에서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가 제 손에 들어오게 됐어요. 이런 종류의 작고 미세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감정 연기에 목말라 있었는데 연기 할 수 있어서 좋았죠. 한 사람의 아주 디테일한 감성을 따라가고, 심리를 표현하는 게 배우로서의 기쁨은 물론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

인생을 살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실패와 고비, 그리고 내려놓기 힘든 상처의 짐들이 있다. 영화는 상처 입고 아파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섬세한 진폭으로 담아낸다. 이병헌은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걸 시나리오에서 느껴,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고, 짐이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재훈이가 마치 옆에 있는 현재의 우리라고 생각이 됐어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나한테도 적용되는 이야기인가? 생각을 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안쓰러워 보이던걸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리석은 삶일 수 있다는 것. 그런 깨달음을 느꼈으면 해요.”

/사진=BH엔터테인먼트/사진=BH엔터테인먼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는 기러기 아빠 이병헌(재훈)-남편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아내 공효진(수진)의 이야기와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유진아’(지나) 안소희의 이야기를 적절히 교차 시키며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감성을 한올 한올 담아낸다.

이병헌은 3명의 캐릭터가 ‘더 나은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현 시대의 인간군상’을 표현하고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해요. 재훈은 목표지점을 정해놓고,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을 뒤로 밀어놓는 인물입니다. 모든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어요. 수진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포기해야 했던 장래 희망, 그리고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여자입니다. 아이 엄마로 살면서 ‘나는 누구였지?’란 질문을 많은 여자들이 느낀다고 하잖아요. 지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실업 청년들을 대변하고 있어요. 이들의 이야기가 많은 걸 대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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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의 모습에선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병헌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는 서부영화 ‘매그니피센트7‘을 찍기 위해 4개월을 미국에 가 있었고, 이후 ’마스터‘를 찍기 위해 2개월간 필리핀에서 생활을 했다. 2개월 남짓한 사이에 다시 ‘싱글라이더’를 찍겠다고 호주행을 택했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참 아이러니죠.”라며 씁쓸한 웃음을 내보였다.

‘싱글라이더’의 명장면 중 하나는 재훈이 아들 방에서 슬프게 오열하는 신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깨달음을 얻은 남자, 남편, 아버지의 모습은 40대 아버지 배우에게서만 경험 할 수 있는 깊이감이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챙기지 않은 가족들의 잘못이기에 공감의 폭은 더욱 커진다.

“실제 아빠가 된 후 맡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영향이 있어요.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배우에게 도움이 되는 걸 무시 할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그런 것이 쌓여서 결국 디테일함을 표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에서도 ‘아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문득 튀어나왔어요. 그러고 나니 내 자신이 더 뭉클해지고 약간 울컥해졌어요. 그런 것들은 (이전엔) 생각지 않았던 감정들이거든요. 아버지가 아니였다면 제 안에서 아주 힘겹게 힘겹게 끄집어내서 했을 생각 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번엔 온전히 빠져서 저도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나왔어요. 스스로 아버지가 된 뒤 생각들이 달라졌다고 느끼기 보다는, 제 생활 패턴이나, 연기를 할 때 문득 문득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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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감독과 이병헌 배우/사진=BH엔터테인먼트이주영 감독과 이병헌 배우/사진=BH엔터테인먼트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이병헌이 16년 만에 선보이는 감성 영화 ‘싱글라이더’는 “또 한 번의 인생연기를 경신했다”는 평과 함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배우가 인물의 감정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전달한다는 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 분명하건만,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시나리오의 내용 뿐 아니라 작가가 상상한 서브 텍스트까지 정확히 그려진다. ‘연기의 신’은 달리 나온 말이 아니었다.

미사여구 없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 줄로 정리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라’이다. 이병헌은 대사도 많지 않고, 아내의 주변을 맴돌면서 관찰하는 남편 역으로 극 전체를 끌고나간다. 그렇기에 이병헌은 재훈이 상황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전달에 신경을 썼다.

“내 감정이 왜곡되지 않게 전달 될 수 있도록 애를 썼죠. 대사가 많이 없으니까 자칫하면 잘못 전달될 수 있잖아요. 표정에 공을 들이진 않았어요. 표정만으로 의미와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긴 힘들어요. 표정은 제 의도와 다르게 왜곡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관객은 배우의 입술, 눈썹등 전체적인 어떤 기운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표정이나 감정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단, 이 인물이 처한 상황을 계속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제가 먼저 느껴요. 거기서 재훈의 감성이나 기운이 관객들에게 잘 느껴졌음 했어요.”

조용 조용 대사를 이어가던 이병헌의 아재 개그 본능은 인터뷰 후반 터져 나왔다. ‘40대 이후 중년층이 보면 좋을 영화인데, 제목을 보고선 다른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하자. “저도 처음에 제목만 듣고는 ‘라이더’ 란 말과 함께 바로 연상되는 오토바이 관련 영화인지 알았어요.(웃음) ‘국제시장’처럼 ‘호주시장’이란 설명이 관객들이 영화를 더 상상하기 좋을까요?” 잠시 인터뷰 분위기를 말랑하게 만들던 그는 ‘싱글라이더’에 대한 특별한 소회를 전했다.

“영화의 흥행 여부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 영화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분명 존재할 거예요.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 중에 ‘싱글라이더’가 인생영화라고 하는 분도 있을 거라 믿어요. 보이지 않는 행복을 미룬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쓸쓸한 깨달음과 함께 지금의 행복을 돌아보게 했어요.

사실 ‘번지점프를 하다’나 ‘달콤한 인생’은 흥행 영화라고 볼 수 없죠. 하지만 여전히 좋은 영화라고 회자되고 있고, 많은 관객들이 지금도 찾아봐요. 그런 게 배우에게는 참 소중해요. ‘싱글라이더’도 누군가에겐 인생영화로 기억될 수 있었음 해요. “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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