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중국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뉴스를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과 센카쿠열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장기를 불태우고 일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했던 그런 광기 어린 일이 벌어질까 걱정입니다.”
‘설마’ 했던 중국의 무차별 사드 보복조치가 하나둘 현실화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현지 한인들의 불안이 극대화하고 있다. 2일 중국 여행업계에 따르면 국가여유국은 이날 베이징 일대 여행사를 소집해 한국행 여행 상품에 대한 전면적인 판매중단을 구두 지시했다. 이는 지난 2012년 중국이 당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대상국인 일본행 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시킨 것과 유사하다. 이번 조치로 중국인의 한국 관광은 개별 자유여행에 국한되게 됐다. 2012년 8월 일본이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했을 당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중국 측의 전방위 보복으로 매출이 반토막 나고 연일 격렬한 폭력시위에 시달렸다.
이날 베이징의 왕징 롯데마트에서 만난 주부 K씨도 사드 이야기를 꺼내자 센카쿠 사태가 재연될까 불안하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시위꾼에게 괜한 해코지를 당할까 봐 한국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이 은근히 염려된다고 토로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이미 도를 넘어선 상태다. 이날 롯데면세점 홈페이지는 중국 지역의 IP를 사용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접속이 일시 차단됐으며 1일에는 중국 내 유통시설이 중국 당국의 일제점검을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 ‘K뷰티’를 주도했던 아모레퍼시픽의 일부 제품이 1월 수입불허 조치 명단에 포함됐던 사실도 확인됐다. K씨 남편의 화장품 사업도 지난해 초까지는 한국산 제품의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중국 내 매장 수를 30% 이상 늘릴 정도로 순풍을 탔지만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제는 한국 브랜드라는 점을 가리고 중국에서 제조된 친환경 제품이라는 것을 선전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냉랭해진 반응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최대 타격을 받은 곳은 성주골프장을 내준 롯데의 중국 사업장들이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베이징 왕징의 롯데마트는 지난해 하반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으로 분위기 전환에 나섰지만 사드의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상 1층에 몰려 있는 휴대폰 매장에서 점원들은 손님에게 삼성·LG 제품 대신 오포와 비보 등 중국 토종제품들을 권하고 있다. 삼성 제품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중국 직원은 배터리 사고가 난 삼성 제품보다 중국 제품의 가성비가 좋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다.
아직 베이징에 반한 시위대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26일 지린성의 장난 롯데마트 앞에서 롯데제품 불매운동을 선동하는 시위꾼이 소동을 벌이는 등 반한 기류가 대규모 시위로 번질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드를 지지하는 롯데는 당장 중국을 떠나라’는 플래카드를 든 10여명의 시위대는 노골적으로 반롯데 목소리를 높이며 한국 제품 불매운동 확산을 부추겼다. 마치 계획된 시나리오처럼 이 시위장면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곧바로 올려졌고 중국 네티즌들은 불이 나게 사진을 휴대폰을 통해 날랐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도 반한을 앞세운 국수주의에 편승한 마케팅을 벌이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뷰티쇼핑몰 쥐메이의 천어우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SNS인 웨이보에 “창사 기념 판촉행사에서 롯데 제품을 모두 제외했다”며 “죽어도 롯데 제품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했다.
광기 어린 중국의 사드 때리기는 오는 15일 ‘중국 소비자의 날’에 극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매년 이 소비자의 날에 관영 중국중앙(CC)TV는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3·15완후이’를 방영하고 외국 기업의 비리나 제품의 문제점을 폭로해 불매운동을 부추긴다. 2015년에는 폭스바겐과 닛산 등 수입차의 수리비 과다청구와 차량 결함 등이 지적됐고 2014년과 2013년에는 각각 일본 카메라 업체 니콘과 애플 등이 혼쭐이 났다.
올해에는 사드 부지를 내놓은 롯데를 비롯해 한국 대표기업들이 주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일각에서는 올해 한국 화장품들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됐다. 한류의 힘을 업고 점유율을 확대해온 한국산 화장품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국 매체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각에서는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지나친 국수주의의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 매체 동북아재경은 최근 중국 매체의 한국 제품 불매운동 관련 언급에 대해 “극단적 민족주의에서 나온 전형적인 쇼비니즘”이라며 “중국은 어떤 법에도 롯데를 쫓아낼 근거가 없으며 패권을 비판해온 중국이 스스로 패권국을 지향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