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의 신차 성공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 디자인과 성능이 개선된 신차가 나오면 자연스레 가격을 올리던 방식 대신 가격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낮추면서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가격, 내려야 차가 팔린다=한국GM은 지난 1월 출시한 준중형 세단 ‘올 뉴 크루즈’ 가격을 최대 200만원 내린다고 8일 밝혔다. ‘프리미엄 준중형 세단’을 지향하며 경쟁 모델보다 200만원 정도 높게 잡았지만 판매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자 백기를 들었다. 기아차는 신형 K7과 K7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기존과 동결했다. 2017년형 모델은 고급 외장 사양이 확대되고 ISG 시스템, 배터리 충전 효율 개선으로 연비를 높였지만 가격은 그대로다. 현대차가 8일 출시한 ‘쏘나타 뉴 라이즈’도 디자인 개선, 실내 계기판 및 내비게이션 등 각종 사양이 업그레이드됐지만 가격은 기존과 같은 수준이다. 르노삼성이 지난해 11월 선보인 2017년형 SM3 가솔린 PE는 고급 인조가죽 및 최고급 가죽시트를 적용했지만 가격은 40만원 낮췄다.
수입차 업계에서도 가격 낮추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BMW코리아의 신형 5시리즈는 기존 모델 대비 최대 300만원 올랐지만 300만원 상당의 반자율주행 패키지와 옵션가 1,000만원에 달하는 M 스포츠 패키지를 전 모델에 적용해 사실상 가격 인하 효과를 봤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오픈카 ‘SLC’의 가격을 기존보다 9%(600만원) 내려 출시했다. 재규어는 ‘XF’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300만원을, 한불모터스는 시트로엥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4칵투스’ 가격을 200만원 내렸다.
◇촘촘해진 가격선·불황·쏠림현상이 이유=출고된 차량의 가격을 내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마케팅의 꽃인 가격 설정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대신 업체들은 매달 프로모션을 통해 비공식으로 할인해줬다. 문제는 프로모션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고객들이 신차를 사기보다 프로모션을 기다리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차라리 공식 가격을 낮춰 고객의 눈길을 끌고 당장 1대라도 더 팔겠다는 각오다. 국산차가 가격을 동결하는 것은 촘촘해진 수입차와의 가격 차가 이유다. 일종의 가격 저지선이 생겼다. 그랜저IG의 최고가는 4,160만원이다. BMW 3시리즈는 4,650만원부터다. ‘차라리 BMW 3시리즈를 사야지’라는 고객을 막기 위해 가성비를 올렸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쏘나타(2,255만~3,253만원)는 경쟁 일본 중형세단 캠리(3,370만원)나 닛산 알티마(2,990만~3,880만원)와 차이가 없다. 수입차 시장이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등 특정 인기 모델로 쏠리면서 안 팔리는 재고를 안고 가기보다 가격을 조금 낮춰서라도 팔자는 의도도 있다. 불황에 차량 모델 다양화로 판매가 부진한 것도 이유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소비자는 살찌지만 업체들은 수익성이 악화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