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지난해 주요신흥국 30개국 가운데 3분의2가 외환보유액을 크게 늘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베트남·체코 등의 외환보유액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이집트와 나이지리아·태국 등도 최근 몇 개월 동안 외환보유액을 큰 폭으로 늘렸다고 WSJ는 전했다. 러시아도 지난 1월의 외환보유액 증가세가 4년여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도 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이 전월 대비 69억달러 늘어난 3조50억달러를 기록해 8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1월 2011년 2월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으로 심리적 마지노선인 3조달러 밑으로 내려가 시장의 우려를 산 바 있다.
외환보유액 증가는 시장의 충격이나 경기침체 등 대내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의 증가 추세는 취약한 글로벌 경기회복세에 따른 ‘위기대응’ 측면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WSJ는 각국의 외환보유액 증가는 표면적으로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28% 오른 점 등에 힘입은 결과지만 근본적으로는 불안한 경제여건에 대한 위기대응 효과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미 금리 인상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WSJ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법인세를 줄이고 미국 경제가 팽창하면 금융 당국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릴 수 있다”며 “이머징 시장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등 정치·경제적 요인에 따른 신흥국들의 불안감이 여전하다”고 분석했다.
일부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개시 등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일정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스위스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250억스위스프랑가량 늘어나며 월간 단위로는 2014년 12월 이후 최대 증가세를 보였다. 덴마크 등 다른 유럽 선진국에서도 외환보유액을 늘리려는 조짐이 이어지고 있다.
신문은 “외환보유액은 각 신흥국들에 위기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비한 보험 같은 존재”라며 “선진국들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