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잃었다.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한 일곱 살 아들을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인한 폐렴 합병증으로 떠나보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아비는 슬픔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역배우 출신인 탤런트 이광기(48·사진)다. 어느덧 아이와 함께 지낸 7년보다 아이를 그리며 보낸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내 삶이 시들어가는 꽃 같았어요. 다 죽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시든 꽃에 씨앗이 있었던 겁니다. 봄이 되니 다시 새싹이 돋는 것을 보며 희망을 찾기 시작했어요.”
시들어버린 꽃과 다시 피어난 꽃에 자신을 투영한 이광기의 사진작가 데뷔 첫 개인전이 서울 영등포구 갤러리AG에서 지난 8일 개막했다. 작품들은 검은 배경 안에 놓인 꽃들, 하지만 한껏 피어오른 예쁜 꽃이 아니라 넘어진 화병과 함께 고개를 떨구거나 시들어 축 처진 꽃들이다. 꽃을 소재로 한 정물로 삶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상징한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들이다.
작업으로 자신의 고뇌를 끄집어내기로 작정한 그는 싱그러운 생화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조화를 뒤섞었다. 정은정 라마라마플라워 대표의 도움을 받아 꽃을 ‘아름답게’ 배치했다. 그런 다음 꽃이 시드는 과정을 관찰했다. 생의 한계를 목격했고 스러진 꽃 옆에 뻔뻔할 정도로 생생하게 선 조화를 보며 생명을 압도하는 죽음과 진실을 누르는 거짓을 발견했다. 이광기는 이들 장면을 정물처럼, 풍경처럼 포착했다.
“제 작업은 진실과 거짓, 혹은 시작과 끝이 결국 같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 때로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는 것처럼 삶과 죽음도 동일한 본질을 나타내는 것 아닐까요. 그것은 순환이고 순환을 이어주는 휴식의 고리가 ‘막간’입니다.”
이광기는 연극 용어인 ‘막간(幕間)’을 전시 제목으로 택했다. 또 다른 막을 준비하는 배우처럼 죽음마저 ‘또 다른 삶이 시작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받아들인 것이다. 작품이 화사한 것은 아니지만 전혀 우울하거나 절망적이지도 않다. 유심히 찾으면 쓰러진 꽃이 품은 생명의 씨앗도 보인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이 올해 여섯 살이다. 가족은 웃음을 되찾았다. 그는 2010년 아이티 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경매를 기획했고 지난해 ‘DMZ캠프그리브스 문화재생사업’에 디렉터로 참여했다.
“예술을 사랑해서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해 작가들을 존경하는 마음에 두루 사귀었고 따뜻한 봉사의 일을 도모하며 전시기획을 맡았는데 이제 사진작가로 첫발을 내딛습니다. 제가 욕심내는 것은 작가적 명성이나 부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가슴을 토닥이는 치유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시는 오는 4월3일까지다. 갤러리AG는 안국약품이 2008년 개관한 비영리 전시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