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朴대통령 탄핵] '한방'은 없었지만...소추사유 '17개 쟁점' 이성적 변론 통했다

[탄핵 인용 이끈 국회 소추위원단 전략은]

"朴, 국가 조직 이용 사익 충족"

마지막까지 헌법적 판단 호소

고영태 녹음파일 먼저 제출

朴측 카드 선점 허 찌르기도

마구잡이 증인 신청 朴대리인단

결국 시간끌기에 발목 잡혀 자멸

10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뒤 국회 탄핵소추위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10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뒤 국회 탄핵소추위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92일간의 치열한 법리 공방 속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이끌어낸 국회 소추위원단의 전략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 측에 비해 다소 조용한 모습을 보였던 국회 측은 결정적 순간마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과감히 펼치며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본격적인 탄핵심판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 측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탄핵소추 사유 중심으로 변론을 진행한 점이 가장 큰 성공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반면 대통령 측은 시간 지연 전략에 치중한 나머지 법리 공방보다는 고영태 녹취파일 등 소추 사유와 거리가 먼 부분에 집중하거나 재판관을 상대로 막말을 하며 재판관들의 신뢰를 잃은 점이 탄핵심판을 실패로 이끈 주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각자 대리인’ 이라는 이름 아래 체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점이 탄핵 인용 결정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탄핵심판을 승리로 이끈 국회 측은 탄핵심판 변론 기간 내내 소추사유를 헌법적 관점에서 재정리한 17개 쟁점 중심으로 공세를 펼쳤다. 일부에서는 검찰 공소장이나 진술서 중심의 단조로운 진행으로 새로운 사실관계에는 미온적이었고 재판관을 설득할 강력한 ‘한방’이 없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런 전략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소추위원 대리인단의 수장을 맡은 황정근 변호사는 최종변론에서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중대하게 위배했다”며 “대통령은 결코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치의 대원칙을 헌재가 분명하게 선언해달라”고 마지막까지 헌법적 판단을 요청했다. 이명웅 변호사도 “국가 조직을 이용해 사익을 충족하고 이를 위한 관권 개입을 능동적으로 실행한 것이며 국가의 전체 헌법시스템을 심각하게 훼손한 매우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며 이성적인 변론을 이어갔다.

결국 헌재가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해 엄격한 헌법적 잣대로 인용 결정을 내리자 국회 측 소추위원인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은 10일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측의 카드를 오히려 먼저 선점하는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도 빛을 발했다.


심판 막판 변수로 떠올랐던 ‘고영태 녹음파일’의 경우 대통령 측이 먼저 증거로 쓰자고 요청했지만 정작 증거로 먼저 제출한 쪽은 국회 측이었다. 대통령 측은 고씨가 측근들과 재단을 장악하려 했다며 고씨의 녹음파일 2,000여개를 모두 법정에서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시간 끌기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회 측은 이 자료가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 농단 실체를 드러낸 자료라 판단하고 일부 녹취록을 증거로 먼저 제출했다.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며 증거로 채택했고 대통령 측이 요구한 2,000여개의 파일을 심판정에서 들어보자는 요구는 거절했다. 국회는 대통령 측의 마지막 카드를 오히려 국회 측에 유리한 자료로 돌려놓았고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 전략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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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통령 측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실시한 대통령 신년기자간담회를 국회 측이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문서 유출 외 인사 개입이나 특정 기업의 거래 강요 의혹을 언급했다. 국회 측은 박 전 대통령이 해당 사안에 개입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은 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특별검사에 의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되자 국회 측은 헌법 위배를 보강하는 취지로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을 담은 서면을 헌재에 제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반면 대통령 측은 대리인단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자멸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시간끌기용으로 신청한 증인들은 오히려 대통령 측에 불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고 일부 대리인단은 재판정을 향해 막말을 퍼붓거나 탄핵과 관련이 없는 ‘색깔론’을 펼쳐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탄핵심판 이후에도 대리인단은 “올바른 재판이 아니었다”며 끝까지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리 공방에 나설 변호사 투입 시기도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막판에 투입된 헌법재판관 출신 이동흡 변호사는 탄핵소추 절차의 적법 절차 위반과 탄핵 사유의 중대성 결여 등 헌법 논리를 내세웠지만 주장을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강일원 주심 재판관도 이 변호사의 주장에 “이제야 헌법재판다워졌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각자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전략이나 의견을 공유하지 않은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변론 진행 중 나온 돌발 발언이나 강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 등은 다른 대리인단과 전혀 공유되지 않았고 최후 변론에서 대통령 최후 진술 ‘가로채기’ 논란마저 나오며 스스로 무너졌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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