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정의를 되찾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광장의 시민들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는 앞으로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인천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이찬석(58) 사장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에 대해 전한 말이다.
1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도 이 사장과 비슷한 심정을 밝혔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면서도 “정의와 상식이 승리한 사필귀정인 만큼 이제는 국론을 통일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숨죽여 오전11시 헌재의 선고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하자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헌재 앞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만세삼창을 외치기도 했고 서로 부둥켜안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촛불집회 진영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헌재 선고를 지켜보던 권장희(56)씨는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최순실에게 농락당했기 때문에 탄핵은 당연하다”며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농락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8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헌재 선고 법정을 참관한 김선의(32)씨는 “전원일치 파면 결정은 당연한 결과이며 앞으로 국론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도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선고를 지켜보면서 마음을 졸였다. 여의도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박모씨는 “헌재의 선고를 지켜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착잡했다”며 “주권을 가진 국민의 명령이 지켜지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지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불미스럽게 물러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집회특수’를 누렸던 광화문 인근 상인들도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 안정이 우선”이라며 헌재 선고를 반겼다. 종로구청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한 상점 사장은 “집회가 계속되는 게 돈 버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보다 국가적 혼란이 사라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설렁탕 가게를 운영하는 민순자씨 역시 “집회가 있는 날 매출은 평소보다 2배가 넘어 도움이 되지만 헌재 결정에 승복해 더 이상 광장에 사람들이 시위하러 모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화문 미술행동에서 자원봉사를 해왔다는 김재현(31)씨는 “판결을 시작으로 광장의 민심을 적극 받아들여 나라 전체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의 서문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는 “안타깝다”는 동정론과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싸늘한 반응이 엇갈렸다. 상인들은 TV를 통해 헌재의 탄핵 발표를 지켜보며 “고향 사람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는데 결국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영오(66)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탄핵이 인용돼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라면서 “하지만 헌법의 가치가 존중돼야 하기 때문에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적으로는 물론 외신의 관심을 끌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인터넷을 통해 헌재의 선고를 지켜본 해외 동포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한모씨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가 나와 기쁘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환영했지만 미국 LA에 거주하는 김성태(34)씨는 “헌재의 판단은 여론과는 별개여야 하는데 이번 결정은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김민형기자 kmh204@sedaily.com·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