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가 정부의 예산편성권·증액동의권을 국회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의원은 매년 ‘쪽지예산’을 넣으며 자신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는데 이들이 예산편성 권한 자체를 가져간다면 결국 나랏빚이 브레이크 없이 불어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행정부의 힘이 빠진 틈을 타 국회가 도를 넘은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5일 출범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현재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는 예산편성권을 국회로 옮기고 기재부의 예산 증액동의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은 기재부가 각 부처의 사업계획을 취합해 이듬해 예산안을 짜고 국회에서 심의를 받는 구조인데 국회가 아예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는 또 기재부가 가져온 예산안을 깎을 수만 있고 늘리려면 기재부의 동의를 받아야 해 이를 없애겠다는 생각이다.
국회의 논리는 크게 2가지다. 행정부에 재정권한이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는 게 첫 번째. 국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익보다 대통령 의중에 따라 예산을 왜곡시켜 편성한 결과 ‘최순실 예산’을 낳았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주도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근거는 같은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미국도 예산편성권을 사실상 의회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행정부가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편성권을 갖고 있지만 이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며 의회가 대폭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이외 나라의 사례를 종합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예산 과정에서의 행정부-입법부 권한 배분’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브라질·필리핀 등 한국을 포함한 20개 주요 대통령제 나라 모두 예산편성권을 행정부가 갖도록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심지어 의회의 권한이 강한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는 영국·독일·스웨덴과 반대통령제인 프랑스도 모두 행정부가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고 증액동의권도 보유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태생적으로 예산과 나랏빚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모두 정부가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다는 식이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만약 예산편성권이 국회로 넘어가거나 정부의 예산 증액동의권이 사라진다면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현상이 퍼지며 국가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은 매우 독특한 예외 사례로 이를 따라 재정권한 배분을 정하는 것은 심각한 예외의 일반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며 “그나마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것은 행정부의 예산편성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40%대 초반으로 미국(120%대)보다 월등히 낮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