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성행경 산업부 차장 saint@sedaily.com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토요일 저녁 긴급하게 이뤄진 2시간의 인터뷰 내내 “규제개혁 없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청년 일자리에 대해서는 “(답변을) 토씨 하나 바꾸지 말고 그대로 반영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절박감을 토로했다. 30여년의 공직생활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은행연합회장, 경총 회장까지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은 경제원로 입장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100만명이 넘는 청년실업자를 방치한다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정치권이 기득권 세력인 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실업자나 미취업자 같은 힘없고 조직화되지 못한 이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존 근로자의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며 “의료나 관광 등 서비스업 분야에서 규제로 일자리가 생기지 못하는 부분을 풀어주는 게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대해 박 회장은 “헌재가 만장일치 결정을 내린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만약 6대2 정도로 탄핵이 인용됐다면 우리 사회의 분열과 분란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이견들이 없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평결문을 만들어 만장일치를 보여준 것은 사회통합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박 회장은 “경제 문제만큼은 보수와 진보가 극한의 대립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국가 경제를 경영하는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복지 수준 향상”이라며 “속도 측면에서 타협점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현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무작정 세율을 올려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해 둔 사마천의 ‘사기(史記)’ 화식열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세금 인상을 통한 복지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춰 그 힘을 다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물건 값이 싼 것은 곧 비싸질 징조이고, 값이 비싼 것은 곧 싸질 징조다. 사람마다 자신의 일에 힘을 쓰고, 각자의 일을 즐거워하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밤낮으로 멈추는 때가 없다.’ 박 회장은 “나라가 세금을 더 거두려고 덤빌 때 세금이 더 걷힌다면 나라 경영을 못할 사람은 없다”며 “경제가 잘되도록 해서 세금이 더 걷히게 만드는 게 마찰도 없거니와 양도 많다는 것은 동서고금 할 것 없는 역사상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실업의 실마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규제해소든 뭐든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그는 “지금 정부가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것을 보면 영세 자영업자의 과당경쟁을 촉진하고 있는 꼴”이라며 “온라인쇼핑몰 하나 생겨서 옷을 더 팔면 누군가는 덜 팔게 되고, 푸드트럭 하나 생기면 옆의 음식점은 덜 팔리는데 이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은 채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려면 그동안 규제로 일자리가 생기지 못했던 부분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도대체 외국에서는 허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면서 외국인 전용 병원을 예로 들었다. 그는 “병원은 투자가 아닌 기부 측면에서만 설립해야 한다는 당국은 아직도 배가 불렀다”며 “이미 우리나라 의료계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만큼 외국인 전용 병원만이라도 투자를 허용하면 막대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통영만 놓고 보더라도 한려수도 케이블카가 설치된 후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넘었다”며 “명산 꼭대기마다 호텔과 산장을 세워 막대한 관광수입을 거두는 유럽이나 중국처럼 우리나라도 관광 인프라 건립을 적극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조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세금으로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를 망각했다”고 질타했다. 박 회장은 “노조들은 목소리를 내면 언론 지상에 다 나올 정도의 기득권 세력”이라며 “진정한 약자들은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인데 정작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나눠 갖는 식으로 비정규직 등을 늘리자는 데 대해 ‘유연 안정성(flexicurity)’이 결여됐다며 반대하는 노동계에는 “고상한 단어로 현혹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 회장은 “예컨대 사용주가 초임을 낮추고 호봉제가 아닌 연봉제로 신규 채용에 나서겠다고 하면 노조가 나서 반대한다”며 “결국 그런 일자리라도 얻겠다는 젊은이들의 선택권을 노조가 제한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경총 회장 자리에 있지만 청년실업만큼은 결코 경영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겠다”며 “적어도 노조 측이 임금 인상분의 일부분을 반납하면 기업들은 그만큼의 신규 채용을 늘려나가는 식으로 같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세계적 흐름인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올라타는 방법 역시 규제개혁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 분야로 침투하는 게 4차 산업혁명”이라면서 “이는 대기업이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만드는 것과 성질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꽃을 피우려면 민첩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이 벌떼같이 달려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맞다”며 “그러려면 공무원들이 관련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개인과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 옥죄기 분위기를 타고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외국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식은 곤란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기업에 가장 좋은 지배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결론이 없다”며 “오히려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주주들에게 너무 많은 칼자루를 쥐여줘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게 다수 견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일부 기업의 경영자들이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일을 저지른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제어하기 위해 경영권을 빼앗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강도원·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