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게임 ‘포켓몬 고(GO)’에 푹 빠진 2년 차 직장인 김성호(32·가명)씨는 요즘 포켓몬스터 캐릭터 모으기에 열중이다. 특히 스티커 ‘띠부띠부(떼고 붙이는)씰’은 그의 최대 관심사다. 띠부띠부씰은 지난 1999년 포켓몬스터 열풍에 힘입어 제작된 빵(당시 500원)에 들어 있던 스티커. 김씨는 16만원을 들여 띠부띠부씰 모음집을 손에 넣었다.
30대 젊은이들 사이에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는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30대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과 영화·패션·게임 관련 상품들이 시대를 건너뛰어 다시 주목받는 셈이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원피스 등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피규어는 30대 남성들이 즐겨 찾은 상품이다. 직장인 최모(38)씨는 최근 한 인터넷 오픈마켓에 특가로 나온 원피스 주인공 피규어 10여개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개당 2만~3만원이라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30만원을 과감하게 결제했다.
30대 여성들이 학창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새하얀 코트화를 찾기 시작하자 한 유명 백화점은 코트화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스포츠 브랜드들도 1990년대 복고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복고 열풍은 게임업계에서도 뜨겁다. 직장인 최규환(32)씨는 초등학교 시절 오락실에서 했던 게임을 스마트폰으로 즐긴다. 최씨는 “어릴 때 오락실에서 엄마에게 잡혀갔던 추억을 되새긴다”며 “요즘은 오락실 고전게임들을 앱스토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PC방 돌풍의 주인공인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출시됐지만 온라인 방송 누적 시청 횟수(지난 1월 기준)가 2,200만회를 웃돌 정도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스타크래프트는 10대, 20대 팬도 많지만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30대 팬층이 두텁다”고 귀띔했다.
직장인 안지성(36)씨는 요즘 퇴근하면 SES 굿즈(goods·연예인 관련 상품)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한다. 안씨는 “어릴 때 좋아하던 SES가 최근 방송에 나와 반가웠다”며 “향수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콘서트 응원도구 등을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30대들이 안락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 상품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진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사람의 비율로 측정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30대가 27.7%로 가장 높았다. 이어 20대(26.5%), 40대(25.0%), 10대(21.8%), 50대(18.6%) 순이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쟁사회를 처음 경험하는 30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심신이 지치는 시기”라며 “어릴 때 추억을 돌이켜 보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감을 줄 수 있어서 관련 상품 구매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위안을 찾기 위해 게임이나 캐릭터 상품에 몰두한 나머지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상품에 지나치게 몰두하기보다는 친구나 지인과 어울리면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우인·이종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