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속에 쇠망의 씨앗이 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직원들에게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당부하는 말이다. 9년 연속 금융지주 당기순이익 1위라는 승자의 함정에 빠져 자칫 자만해질 수 있음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1년 3월 취임한 한 회장은 오는 24일 6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한다.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금융뿐만 아니라 금융권에서 상징적인 자리로 통한다. 금융지주 당기순이익 1위를 차치하더라도 ‘신한이 하면 다르다’는 신한의 문화에서 나오는 힘 때문이다. 신한 사태 이후 조직을 추스르고 ‘따뜻한 금융’을 앞세운 신한의 정체성을 만든 일등공신이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임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드물다.
‘3년 연속 당기순익 2조원 돌파, 지난해 6년 만의 최대 실적.’ 신한금융의 화려한 재무성과다. 한 회장은 지난 6년간 꾸준한 수익을 통해 향후 인수합병(M&A)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실탄을 마련한 것을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로 꼽았다. 한 회장은 “6년 동안 3조1,0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했고 8조원을 유보해 전체 11조1,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다”면서 “후임자들이 M&A와 해외투자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재무적 뒷받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당시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마련했다. 신한금융은 은행과 카드·보험 등 비은행 이익 비중이 6대4로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로 꼽혀왔기에 그동안 M&A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한 회장은 이제는 자금 보유로 M&A 시장에서도 큰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루라도 임기를 더 늘리기 위해 정관을 고치는 등 꼼수가 아닌 최고의 자리에서 떠날 때를 아는 한 회장의 행보는 금융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014년 3월 연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지난해 주주총회까지 그는 누누이 3월 임기 종료를 스스로 예고했다. 한 회장은 2011년 취임 초 곧바로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규정을 만들었다. 규정은 회장 임기를 만 70세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혹자들은 한 회장이 스스로 ‘만 70세 임기룰’에 빠져 임기를 자승자박한 것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한 회장은 이에 대해 “후임자를 잘 선정해서 내가 만든 제도를 직접 시행해보는 것도 나의 로망이었다”면서 “지주 회장을 거쳐 고문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금융권에서 아직 많지 않은데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1948년생인 한 회장은 이 규정에 따르면 임기가 1년 8개월 남은 셈이다.
‘따뜻한 금융’은 한 회장이 꼽은 가장 보람있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한 회장은 “신한의 당초 가치인 ‘새롭게·알차게·따뜻하게’에서 따뜻한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이 따뜻한 금융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자신의 본업인 금융을 통해 보다 높은 수익률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치라고 생각했다”면서 “초기에는 직원들의 이해도 낮았지만 이 가치를 내 건 후 수정자본주의와 같은 흐름이 나오면서 점점 힘을 싣게 됐다”고 말했다. 후임자가 가장 지켜줬으면 하는 가치로도 ‘따뜻한 금융’을 꼽았다. 그는 “지금 정기예금금리가 1%대에 머무는 시대지만 외국은 자산운용상품이 5~8%대 상품도 나온다”면서 “전통적인 은행원이 하던 것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 신한이 하니 다르더라는 것을 전파하는 것이 진정한 따뜻한 금융”이라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라. 그리고 따뜻한 금융을 통해 늘 지속가능한 금융을 만들어라”가 그것이었다.
한 회장은 신한 사태에 대해 “신한 사태 이후 취임해 신한은 내부 조직적으로 화합했고 법률적으로 도 마무리됐지만 감성적인 면에서 아직 남아 있다”면서 “새로운 경영진이 취임하는 마당에 과오를 따지면 화합보다는 분열로 가기 때문에 신한을 사랑하는 선배라면 각자가 내려놔야 하고 그게 진정으로 이기는 길”이라며 원칙론을 고수했다. 이어 “스톡옵션 등 구체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은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에 옳지 않고 새로운 이사회 3명이 교체되면 진지하게 토론해서 감성적인 것도 해결했으면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한 회장은 퇴임 후 그동안 47년 금융경험을 노하우로 신한금융 고문을 맡는다. 신한금융이 고문직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