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광장에 100만명씩 모여야 하나요. 이제는 시스템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제 중요한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관여할 때가 됐습니다.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책을 선택하면 국민들이 거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직접민주주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 촛불민심은 대통령과 행정부는 물론 국회도 불신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국회가 먼저 ‘제 머리 깎기’에 나서고 있다. 헌법개정안과 각종 법률안 제정·개정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대거 도입하려 하고 있다.
◇국민소환=그중 핵심은 ‘국민소환’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선출직 공직자를 직접 시민들이 자리에서 끌어내리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들을 소환하는 ‘주민소환제도’는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제외다.
국민의당은 지난 2월17일 발표한 헌법개정안을 통해 국민투표·국민발안과 함께 국민소환의 도입 근거를 헌법에 담았다. 국민의당 헌법개정안 제41조3항에는 ‘모든 국민은 국회의원, 행정 및 사법부 공직자에 대한 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대통령은 제외했지만 국회의원은 명백히 포함시켰다.
이에 앞서 황영철 의원 등 바른정당 의원 33명도 2월3일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하고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의원 소환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 청렴 의무를 위반하거나 지위 남용으로 사익 추구에 나설 경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유권자 15%의 서명을 받아 소환을 요청할 수 있다. 이어 유권자 총수의 3분의1이 투표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원직이 상실된다. 대상은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 모두 포함된다. 이 법은 바른정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하기로 한 1호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 18명의 의원들도 유사한 법을 발의했는데 민주당 안에서는 유효투표수가 없다. 발의요건으로 ‘직전 국회의원 선거 전국 평균 투표율의 15% 이상’이라는 조건은 있지만 이 요건을 충족해 국민소환을 요청하면 무조건 투표하고 개표해 결과에 따라야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5일 정치개혁안 발표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 불량 의원에 대한 리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이 합의한 헌법개정안에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빠졌다. 결국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올 수 있는 이 제도를 국회의원들이 결정적 순간에 제외시킨 것이다.
◇국민투표와 국민발안=국민의당 헌법개정안 제41조에는 ‘1항 모든 국민은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2항 모든 국민은 법률안을 발안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법률안 발의는 국회와 행정부만 할 수 있다. 3당 합의 헌법개정안에도 이 두 가지 제도의 도입은 명시하고 있다.
국민투표란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해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가 요구하면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한 스위스의 경우 복지·교육·경제·국가질서 등 나라의 주요정책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최근에는 기본소득 도입, 법인세 인하 등 세제개혁, 이민자 귀화 완화 이슈 등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가끔 국민투표가 있지만 주로 대통령 등 위로부터의 요청에 따른 국민투표다. 유신헌법 통과를 위한 국민투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도입하려는 제도는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 즉 일반 국민들의 요청에 따른 국민투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정치개혁안 발표에서 “국민이 직접 제안하고, 결정하고, 제대로 일하지 않는 일꾼은 언제든 불러들이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법사위에 장기계류된 안건을 국민 100만명 이상의 서명으로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직권상정법(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유 의원은 “꼭 필요한 법임에도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의 개정안은 유권자 100만명의 서명이 있을 경우 별다른 이유 없이 법사위에 120일 이상 묶여 있는 법안을 곧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이런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10일 이내 처리하도록 못 박았다. /안의식 선임기자 miracl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