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서삼희 판사는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유 2년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서 판사는 “피고인이 불법으로 소지한 가스총을 이용해 계약 상대방을 협박한 것은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고령의 암 말기 환자인 점과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집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정씨는 지난해 8월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소재 90억원대 자택을 현직 언론사 회장인 A씨에게 팔기로 하고 계약금 2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가족들이 주택 매각을 반대하자 정씨는 A씨에게 매매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A씨는 요구를 거부했고 정씨는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A씨가 보낸 사람들에게 가스총을 꺼내보였다. 그는 가스총을 들고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돈만 주면 흔적도 없이 일처리가 된다. 가서 A 회장에게 전하라”며 청부살인을 예고하는 말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1980~1990년대 슬롯머신 업소를 운영하며 업계 대부로 군림했다. 그는 정·관계 유력인사는 물론 유명 조직폭력단인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 등의 비호 속에 사업을 확장했다. 1993년 정씨와 동생 덕일씨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벌인 로비에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통일국민당 의원 등 유력인사 10여 명이 구속된 사건은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정씨는 박영수 특별검사와도 인연이 있는데, 박 특검은 2009년 검찰을 떠난 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위증교사 혐의로 고소당한 정씨의 변호를 맡아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박 특검은 앙심을 품은 소송 상대인으로부터 2015년 ‘커터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