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초능력자를 자임하는 유리겔라가 한국을 찾았을 때 전국이 떠들썩했다.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숟가락이 휘어지는 광경을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지켜본 이들은 너도나도 한번 해보리라는 마음에 눈을 부릅뜨고 숟가락을 쏘아봤으나 멀쩡한 숟가락이 휠 턱이 있나. 그저 “유리겔라는 사기꾼이다”, “아니다. 초능력자다”라는 뒷공론이 무성했을 뿐이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중반 유럽에서는 유리겔라를 둘러싸고 한층 격렬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특히 천재 물리학자 브라이언 조지프슨이 유리겔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을 때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조지프슨이라면 전류의 흐름에 대한 인식의 새 지평을 연 ‘조지프슨 효과’로 33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계의 꿈나무 아닌가. 그런 그가 비과학적인 눈속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유리겔라 편에 서다니 충격이 대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프슨은 왜 ‘과학계의 이단자’의 멍에를 무릅쓰면서까지 염력이나 텔레파시 같은 초심리학을 옹호했을까. 신간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은 이렇게 짐작한다. “조지프슨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현재 패러다임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직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물리학자 맹성렬이 쓴 이 책은 주류 과학이론의 전복과 역사적 상식에 대한 뒤집기로 가득하다.
극단적 다윈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의 전위로서 열광적인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도 전복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나뭇잎과 똑같은 외형을 갖게 된 나뭇잎벌레의 변이를 통해 다윈 이론부터 공격한다. 나뭇잎벌레는 상대방이 나뭇잎인지 동료인지 분간을 못하고 서로 뜯어먹을 정도로 지나치게 완벽한 나뭇잎 모양으로 진화했는데, 이는 스스로의 보호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으로 다윈 이론을 거스른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진화를 등산에 비유한 도킨스의 ‘불가능의 산을 오르며’의 이론을 공략한다. 나뭇잎벌레의 약 2억년에 걸친 막대 형태에서 이파리 형태로의 진화 과정에 ‘불가능한 산을 오르는’ 모델을 적용하려면 수많은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가정해야 하는데, 도킨스식 접근은 아무래도 무모해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라리 이 곤충에게 미스테리한 능력이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첨성대에 대한 상식의 뒤집기도 시도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첨성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또는 동양 최고 천문대’라는 것이 100여년간 지속된 주류 학계의 공인된 관점이었으나 논리적으로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첨성대의 구조 자체가 꼭대기에 올라가 별을 관측하기엔 어울리지 않으므로 발상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첨성대가 별이 아닌 태양과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가설 △불교의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가설 △풍년을 기원한 토착 종교의 제단이라는 가설 등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천문학적 지식이 인도의 종교적 틀에 융화되어 신라에 첨성대로 탄생하게 됐다”고 잠정결론을 내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공학박사인 저자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음을 자각하고, 우주의 미스터리에 전율한다고 했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도 “어떤 이도 확실한 진리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추측으로 엮인 그물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과학적 지식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추론에 불과할 뿐 아니라 지식의 원리상 진리에 좀 더 가까운 것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현대 철학자 칼 포퍼의 말도 사족일 뿐이다. 1만4,000원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