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업체 우리산업이 하청 업체에 어음할인료, 지연이자 등을 상습적으로 지급하지 않다가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됐습니다. 경영상 큰 흑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하청업체에 지급할 어음할인료 3억5,000만원과 지연이자 395만원을 주지 않다가 공정위에 딱 걸렸습니다.
하청 업체의 돈을 떼먹은 우리산업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요. 우리산업은 지난해 2,58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전년에 비해 각각 31.6%, 47.8%나 늘었습니다. 우량 기업들에게는 1~2억원 없어도 경영상에 문제는 없겠지만 영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명운이 달린 금액입니다. 하청업체 돈 떼먹고 실적이 진짜 좋아졌으니 이것도 ‘원가절감’이라고 봐줘야 할까요.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상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산업은 이미 경고조치를 3회나 받았습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자진 시정했지만 공정위가 네 번째 문제를 삼은 이후라 씁쓸한 감이 있습니다.
우리산업만 상습적일까요. 지난 9일 동진레저도 하청업체에 어음 대체 결제 수수료와 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않아 공정위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지난 2월 포스코아이씨티도 하청업체에 하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과징금 14억원을 부과 받았습니다. 공정위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매주 1~2건씩 공정위 제재 사례가 나옵니다. 공정위가 매주 이 정도로 잡아낼 정도면 실제로는 훨씬 많다는 건데 이렇게 우리 산업계에는 하청 업체에 대한 ‘갑질’이 팽배합니다. 2015년 한 해만 공정위가 하도급법 위반으로 제재한 건 수는 1,358건입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 신고까지 한 하청 업체들은 신고를 결정한 순간 앞으로 원청업체와의 계약을 포기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는 보복을 하면 안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게 잘 되겠냐”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갑질을 한 기업 위에는 또 다른 ‘갑’도 있습니다. 1차, 2차, 3차 순서로 내려갈수록 ‘을’이 되고 협력업체들은 자신들의 원청업체 눈치를 보며 땀 흘려 만든 제품에 대해 정당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초 발표한 ‘2016년 중소제조업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1차 협력 업체는 하도급 거래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9.6%에 불과했는데 2차 협력 업체는 14.4%, 3차는 17.6%로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최초로 발주를 하게 되는 대기업들이 단가를 인하하면 1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 업체로, 다시 2차 협력 업체가 3차 협력 업체로 그 비용을 전가시키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습니다. 하청업체들은 대금을 결정할 때, 대금을 받을 때, 재납품 할 때, 영수증을 받을 때, 반품할 때 모든 비즈니스 과정에서 ‘갑질’에 노출돼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단가를 결정하는 일에 하청업체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자동차나 전자 등 협력 업체 단계가 많은 산업에서 하청업체들이 듣기만 해도 진저리 치는 단어 ‘CR’이라는 게 있습니다. ‘코스트 리덕션’의 약자인데 직역하면 원가절감이지만 업계에서는 매년 일정률 이상의 가격을 낮추는 용어로 통용됩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올해 1,000원에 납품했으면 그 다음해에는 3% 낮추고, 그 다음해에도 3%를 낮추는 식으로 원가 절감을 하는 게 ‘CR’”이라며 “엔지니어링이라는 게 같은 제품에 대해서도 매년 원가를 절감하라고 있는 거지만 자동차 값은 올리면서 단가는 낮추는 걸 보면 씁쓸한 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하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다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기업의 비중이 2015년 기준 47.3%입니다. 1966년 중소기업을 육성해보겠다며 만든 중소기업기본법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하도급 업체인 셈입니다. 이 하청업체들의 납품 총액은 263조원에 달해 우리 경제가 얼마나 하도급에 의존하는 지, 대기업 등 원청 업체에 의존적인 구조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반도체부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새 동반성장을 많이 강조하면서 환경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기업이 ’을‘인 현실은 변함이 없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갑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제품 경쟁력을 높여서 하청 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하청업체는 소수겠죠. 두 번째는 하청업체들이 동업자 정신을 갖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회사만 잘 되면 된다는 식으로 원청업체에 길들여 진다면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듯합니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기업들이 일치단결해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바로잡아 공정한 거래문화를 함께 조성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부도 공정한 거래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하도급법 위반자에 대해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갑의 위치에 있다고 ‘갑질’을 일삼는 원청업체들의 인식 개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