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포토라인에 서는 대통령

김성수 사회부장

"국익 위해 사퇴" 닉슨 퇴임사에

반대편 시민도 진정성 받아들여

국민 공분 일으켜온 박前대통령

이제라도 사과하는 모습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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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남지 않았다. 다시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순간이다. 국민들은 포토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두 번의 전례가 있으니 낯선 장면은 아니다.


포토라인은 취재 경쟁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한 약속이다. 취재진은 이 선을 넘지 않고 촬영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사받게 될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는 한 변이 70㎝가량인 삼각형을 가운데 두고 7m 간격의 포토라인이 그려져 있다.

이 삼각형 위에 서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심적 부담을 느낀다.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질문 세례에 웬만한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포토라인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여기저기서 터지는 고함과 몸싸움에 아무리 거물급 피의자라도 기가 한풀 꺾인 채 조사실로 들어가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청사 현관 앞에 도착하면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이후 다섯 칸 계단을 오른 뒤 5m 앞 출입문을 거쳐 청사로 들어가게 된다. 파면 당한 지 11일 만에 국민들 앞에 서게 되는 박 전 대통령은 과연 어떤 말을 할까.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지난 1995년 11월1일 전직 대통령 최초로 포토라인에 섰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라고 말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출발할 때) 왜 국민들에게 면목없다고 말했느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면목없는 일이죠”라며 짧게 답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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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다시 되돌려 1974년 8월8일로 가보자. 박 전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기 일주일 전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분여간의 짧은 퇴임 발표 후 다음 날 사퇴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나라의 상처를 치료하고 지난 시간의 비통함과 분열을 과거사로 돌리는 것”이라며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 최초로 대통령 사임이라는 불명예를 피하려고 버티던 닉슨은 상원의 탄핵안 통과가 확실시되자 하야를 선택했다. 퇴임사에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을 넣지도 않았다. 하지만 국익을 퇴임의 이유로 내세워 ‘대통령의 마지막 양심은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과 비슷한 처지의 박 전 대통령은 아직 단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삼성동 자택 앞에서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해 상당수 국민의 공분만 샀다.

닉슨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백악관 앞에서 그의 탄핵을 외쳐 온 집회 참가자들은 마치 장례식에 참석한 듯 침울해했고 탄핵 깃발도 스스로 내렸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반(反)닉슨 군중들은 대통령의 결단을 진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몇 시간 뒤 포토라인에 서게 될 박 전 대통령도 이제 자신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틀에 박힌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원한다.

지금 이 순간도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손범규 변호사가 전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찰의 소환 조사에) 적극 응해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는 말이 자꾸 걸린다. ‘아무쪼록 특별한 사정이 없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앞선다. sskim@sedaily.com

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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