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가 A매치에서 한국을 이긴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지난 2010년 2월10일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이었는데 한국은 0대3의 충격 패를 떠안았다. 한국 축구는 중국에 역대 18승12무1패의 절대 우세를 지키는 동안 중국 원정에서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23일 오후8시35분(한국시각) 중국 창사의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릴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중국 원정도 한국의 객관적인 우세는 분명하다. 그러나 외부의 적과도 싸워야 하는 이번 일전은 어느 때보다 험난한 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아연맹(AFC)과 중국협회에 공문을 보내 안전대책을 당부할 정도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전세기 이용이 중국 당국의 거부로 취소되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19일 밤 중국 입국부터 20일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3일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열 양상으로 치달을지 모를 응원전, 편파판정 등도 경계대상이다.
허룽스타디움의 수용인원은 5만5,000명. 한국의 원정응원단 200여명을 빼면 모두 중국 홈 관중으로 가득 찰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보다 관중 안전이 더 걱정인 이유다. 2004년 창사에서 열렸던 올림픽 대표팀 간 경기에서 중국 관중이 던진 물병과 너트 등에 한국 관중이 다친 적도 있었다. 단체관전을 계획했던 현지 교민들은 사드로 인한 심상찮은 분위기에 경기장 방문을 이미 취소했다.
중국 내에서도 축구 열기가 뜨거운 창사 지역의 축구 팬들은 “월드컵에 못 나가더라도 한국만은 격파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중국은 반환점을 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A조 꼴찌(2무3패)에 머물고 있다. 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라도 나가는 게 현실적인 목표. 한국전 승리를 이끌었던 가오훙보 감독을 경질하고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를 지난해 10월 사령탑에 앉힐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안내했던 리피 감독은 광저우 헝다의 중국슈퍼리그 3년 연속 우승(2012~2014년)을 조련하기도 했다. 중국은 A매치 일정에 2주 앞서 자국 리그를 중단하며 리피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이 20일 현지 훈련을 시작한 데 비해 중국은 지난 16일 창사에 소집됐다. 2010년 한국을 잡을 때 골을 넣었던 가오린과 유하이도 소집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손흥민(토트넘)이 경고누적으로 뛰지 못하고 부상자도 많은 한국은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의 노련한 공수 조율과 신예 황희찬(잘츠부르크)의 저돌적인 공격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겨울 이적시장에서 중국리그의 ‘황사머니’를 거절하고 잉글랜드에 남았다. 중국전이 90번째 A매치. 19일 프리미어리그 본머스전에서 67분을 소화하며 중국전을 준비했다. 무릎 부상으로 6주 이상 전력에서 이탈해 있던 기성용이다. 몸싸움에 능한 ‘황소’ 황희찬은 20일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오스트리아 빈전에서 후반 16분 교체로 나서고도 2골을 몰아쳤다. 올 시즌 성적은 정규리그 18경기 7골. 유로파리그에서는 3경기 2골을 뽑았다. 지난해 9월 중국과의 홈경기(3대2 한국 승)에서 후반 34분에야 교체 출전해 아쉬움을 남겼던 황희찬은 네 번째 A매치가 될 중국 원정에서 데뷔골을 벼르고 있다.
중국은 거친 플레이로 신경전을 유도할 것으로 보여 투쟁심이 강한 기성용과 황희찬이 특히 중국전 카드로 적격이라는 평가다. 더불어 선수 간 불필요한 충돌과 부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성용의 발에서 시작되는 간결한 패스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한판이다. 기성용은 20일에 대표팀에 합류했고 황희찬은 21일부터 발을 맞춘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 팀 동료인 구자철과 지동원도 19일 리그전에서 나란히 풀타임을 소화한 뒤 20일 합류했다. 구자철은 “경기장 분위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축구가 많이 성장했지만 우리가 가진 기량을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3승1무1패로 이란에 승점 1점 뒤진 조 2위를 달리고 있다.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