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위기의 보험산업, 혁신이 답이다] '비급여 의료비'로 보험금 술술...부실 막는 관리기구 상설화를

<2>여전히 미완인 실손보험 개편

MRI·도수치료·성형·미용 등

감독체계·심사기준도 없고

병원이 진료코드 자율 관리

실손보험 손해율 120% 달해

당국 체계개편 등 대책 마련

내달 새형태 상품 판매되지만

속도 늦고·실현 가능성 의문



허리와 목에 통증이 와 병원을 찾은 30대 정모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입원을 권유받았다. 병원 측은 “도수치료를 할 예정인데 통원치료에 지급되는 보험료로는 도수치료를 받을 수 없고 입원을 하면 더 많은 보험료가 나와 도수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병원의 권유에 정씨는 17일간 입원을 하고 총 628만원어치의 도수치료를 받았다. 의료비는 가입해둔 실손의료보험으로 처리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씨의 사례가 절대 드문 경우가 아니다”라며 “환자가 찾아오면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보고 이에 따라 비급여 항목을 진료에 포함시키는 일이 일부 병원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실손의료보험이 일부 가입자의 남용과 당국의 관리체계 미비로 전체 의료비 증가의 주범이 되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실손보험상품 체계 개편 등의 대책을 내놓아 다음달부터 새로운 형태의 실손의료보험이 판매되지만 실손보험 남용과 이에 따른 의료체계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관리기구를 상설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손의료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하거나 통원치료를 받았을 때 의료비 일부를 보장하는 상품이다. 현재 가입자는 3,265만명에 이르러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국내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고령화되는 추세를 고려하면 민간 안전망으로서 실손의료보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당국과 업계·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실손보험이 정책 도마에 오른 것은 이른바 ‘보험 처리’하는 의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실손보험을 팔아 벌어들이는 보험료보다 나가는 보험금이 더 많으면서 손해율은 몇년째 120%대를 기록하고 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손해율이 악화되고 이에 따라 보험료가 오르는 악순환이 심화되면 실손의료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개발원은 현재 추세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유지될 경우 지난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10만6,000원인 실손보험료가 오는 2026년이면 21만6,000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실손보험의 부실은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지급하지 않는 부분, 즉 비급여 항목에서 출발한다. 비급여 항목은 급여 항목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환자가 병원에서 받는 진료행위 중 건강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나 도수치료, 증식치료, 성형, 미용 등이 해당한다. 현재 비급여 의료비는 23조원에 이른다. 비급여 의료비가 증가하면서 건강보험공단이 건보 지급액을 늘려나가도 전체 의료비 중 건보의 비중은 몇년째 60%선에 머물고 있다.


새나가는 돈도 바로 비급여 항목에서 나온다. 급여 항목은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이 나가는 만큼 건별로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비급여 항목은 이와 달리 의료행위가 꼭 필요한 것인지 증명할 만한 마땅한 감독 기준이 없다. 얼마나 진료를 할지, 무슨 진료를 할지 모두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겨진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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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병원의 진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의 진료행위가 하나의 이름이나 코드로 통일돼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감사원에 따르면 현재 1만6,680개의 비급여 항목 가운데 진료명칭이나 코드가 표준화된 항목은 9.7%인 1,611개에 불과하다. 정 연구위원은 “과연 비용이 적절한지, 이런 진료를 하는 것이 적정한 것인지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심사를 위한 법적 기준도 아직 없다. 또 다른 민간 보험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을 두고 사고로 인한 진료 적정성을 심사한다. 이에 같은 도수치료라도 법적 기준이 있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1회에 1만6,520원으로 치료가 제한되지만 실손보험 가입자는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제도의 미비가 의료비 증가와 실손보험 누수를 방치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당국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난해 12월 코드 표준화와 관리체계 마련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험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속도와 실현 가능성이다. 보험업계의 반색 이면에는 복지부와 금융위·보험업계·의료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당국이 재빨리 풀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가 짙게 녹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만6,000여개의 비급여 코드 가운데 약 10%인 1,611개가 표준화된 것도 그나마 2012년부터 심평원이 의료계와 함께 표준화 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특히 실손보험의 남용을 막기 위한 상품 대책은 세밀한 반면 인프라 정비 부문은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급여 부문 진료행위 코드를 지난해부터 100항목씩 확대하기로 했지만 전체 비급여 코드 수를 고려하면 속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급여 현황 공개 대상을 올해 200개로 확대한다는 대책도 있지만 전체 700개에 비하면 여전히 대다수의 진료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의료기관의 90.28%를 차지하는 의원급은 공개 의무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보험 남용 의혹이 있는 의료기관 대다수는 소규모 의원인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차제에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논의 기구를 상설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복지부와 금융위는 지난해 5월 각각 금융개혁 차원에서 실손의료보험을 안정화시키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협의회를 발족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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