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각 그룹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은 서초동 검찰청사만 쳐다볼 뿐 관료들과의 접촉은 극도로 꺼린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은 그룹 차원의 대관 기능이 아예 사라진 상황이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와해 직전의 위기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기업의 목소리를 빌려 정치권의 악법을 막기도 더 버거워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관이라는 것이 기업의 목소리를 정부에 생생히 제대로 전달하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는데 삼성 그룹 해체를 분기점으로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의 창구가 약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삼성 그룹’이 해체된 후 삼성 내외부를 둘러싼 혼선이 하나둘씩 커지고 있다. 삼성이 내부적으로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를 도입했다지만 전략·인사·성과보상·계열사 간 업무조정 등 내부 업무 프로세스들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고 업무를 진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온다. 임원 인사가 보류되면서 내부의 불만은 고조되고 새로운 사업 역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을 타고 ‘맏형’인 삼성전자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달려가고 있으나 삼성 계열사 전체의 중장기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그룹 해체 이후 삼성의 경쟁력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삼성그룹의 성장사를 다룬 ‘삼성웨이’를 쓴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의 미래전략실은 각 계열사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갖고 계열사 내부적인 해이를 막는 긍정적인 기능을 해왔는데 이 기능이 없어진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앞으로 전자나 생명 등 각 업종 대표 계열사 중심으로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는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등과 관련한 완전히 새로운 사업 쪽으로의 진출은 (그룹이 없다면 ) 어려워지지 않겠냐”고 진단했다.
삼성 내외부에서 그룹 해체에 따른 혼선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결국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개편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지주사로 전환하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전실 기능 중 일부가 지주사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이나 M&A 등 전략적 의사결정은 물론 전자·전기 분야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지주사 아래로 모이면서 계열사 간 업무조정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미래 신사업 발굴이나 비주력 사업 부문의 매각 같은 결정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예정대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르면 오는 5월께 지주사 전환 여부를 발표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24일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열리는 가운데 주총장에서도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포함해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관한 주주들의 질의와 회사의 언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홍우·김현진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