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고궁, 달빛 별빛을 만나다

박영근 문화재청 차장



봄날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나면 중전마마는 어린 동궁과 함께 봄꽃이 핀 궁궐 후원을 거닐며 다정하게 담소를 나눴을지 모른다. 나라의 정사를 돌보던 임금도 가끔은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혔을 테고 바람에 한들거리는 연분홍빛 능수벚꽃을 오래도록 바라봤을 것이다. 어떤 건물이든 사는 사람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와 그 안에 있는 공기마저 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궁궐은 살았던 주체들에 대한 신비감이 있기 때문에 여느 공간과 다른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궁궐에 가면 문고리·기둥·마룻바닥 등을 허투루 보지 않고 역사가 남긴 호흡의 흔적과 마음의 빛깔을 찾는 것이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궁궐을 방문한 내외국인 수가 1,061만명을 기록한 것을 보더라도 궁궐에 대한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접목되면서 궁궐은 문화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련기사



2010년 첫선을 보인 ‘창덕궁 달빛기행’의 경우 매해 예매 시작 수분 만에 입장권이 매진되는 이변을 보인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으면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보존한다는 문화재 정책의 인식 전환은 국민이 원하는 문화 욕구와 시대 정신에 부응한 것이었다. 궁궐의 또 다른 모습,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 창덕궁 달빛기행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화됐다. 궁에 앉아 임금의 수라상을 먹어보며 공연을 보고 해설을 들으며 심야에 경복궁을 거닐 수 있는 ‘경복궁 별빛야행’ 프로그램도 생겼다. 새로운 시도, 색다른 이벤트에 관람객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올해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야행의 개최 횟수를 대폭 늘렸다. 특히 올해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은 해라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황실 문화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지난해 49일 동안 진행된 창덕궁 달빛기행은 92일로 늘려 운영하며 경복궁 별빛야행도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확대해 올해는 45일 동안 진행한다. 이처럼 새로운 콘텐츠의 발굴이 궁궐에 대한 시민의 양적·질적 만족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박영근 문화재청 차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