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존 무역질서 판 깨기와 무슬림 차별 움직임에 당혹해하는 미국 우방국들을 향한 적극적인 구애 공세로 경제적 실익 챙기기와 미국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22일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순방에 나섰다. 중국 매체들은 리 총리가 첫 호주 방문에서 맬컴 턴불 총리와 만나 무역·투자 분야 등에서의 협력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4년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리 총리의 방문은 2013년 취임 이후 처음이다.
리 총리는 턴불 총리를 만나 2015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수위를 한 단계 높이는 방안과 호주 정부가 추진하는 ‘호주 북부 대개발’ 참여 가능성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호주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4조4,000억원 규모의 ‘북부 호주 인프라 기금(NAIF)’에 투자를 희망하고 있지만 호주 언론들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주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여파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중국이 채워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만큼 리 총리가 이번 방문에서 파격적인 선물 보따리를 풀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리 총리는 이번 순방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제공동체의 진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미국의 탈퇴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한 TPP에 중국을 끌어들이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가운데 TPP에 대항하는 RCEP에 공을 들여온 중국도 TPP 가입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이들 국가에 대한 구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 기회에서 미국의 우방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확실한 자국 지원군으로 돌려세워 글로벌 외교가에서 중국의 위상을 단단히 하겠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 총리의 이번 호주 방문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공세 속에 진행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며 “호주는 이번 리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무역·안보의 우선순위를 중국으로 옮겨야 할지를 놓고 저울질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 전통적 미국 맹방인 중동 국가에도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달 15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중국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에너지 분야 등에서 중국과 650억달러의 협력사업에 합의했다. 뒤이어 19일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국빈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21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어 경제·기술·우주항공 분야에서의 양국 교류 확대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한편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와 비교적 불편한 관계를 보여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들 국가와의 거리 좁히기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대표적인 미국 우방 중동 국가와 외교관계를 강화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