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태반이 후보자나 정책·공약을 알지 못하는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다.” 4·12 총선을 코앞에 둔 1년 전 3월 말의 신문 사설의 한 부분이다. 새누리당은 친 박근혜, 비 박근혜계 공천을 둘러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내홍을 거듭하고 있었고 야권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공천 갈등을 겪고 있을 때다. 이 뿐만 아니라 선거구마저 법적 시한을 3개월이나 넘겨 2월 말에야 간신히 확정됐으니 유권자 입장에서 혼란스러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마저도 기억이 아득할 정도니 우리 정치 지형의 변화무쌍이 새삼스럽다.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실시 되는 전국 투표인 ‘5·9 대통령 선거’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불과 60일이라는 시간 제약 안에서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과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선거를 한 달 앞둔 4월 초나 돼야 실제 투표지에 기재될 후보자의 면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적·물리적 제약뿐 아니다. 한국 사회가 현재 떠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정당의 제안인 정책과 공약마저 여전히 안갯속이다. 4당 체제에다 각 당마다 2~4명씩의 경선 후보가 있으니 이를 제대로 분류하는 것조차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
문제는 이번은 총선이 아니라 대선이라는 점이다. 선거 다음날 바로 19대 대통령은 취임하게 되고 새 정부의 임기가 시작된다. 통상 주어지던 2개월여의 정권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고 지금 봐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되는 ‘허니문’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던 새 정부는 여론과 정치권의 혹독한 사후 검증 기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내각 인선은 무한정 미뤄질 것이며 최악의 경우 정부 출범과 함께 ‘레임덕’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비단 특정후보를 밀고 있는 각 당의 문제가 아니고 대선 선택을 불과 47일 앞두고 있는 한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자 숙제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대선후보 검증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당면 현안에 대한 보다 명확한 입장과 정책 방향을 대선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어떤 공약이든 50일도 채 안 돼 곧바로 신정부의 정책 기조와 국정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각 후보 진영에서 내놓고 있는 정책과 공약의 방향과 모호성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외교·안보 사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논란은 대선 선거운동과 맞물리면서 국익에 하등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국론 분열적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보면 후보들은 ‘대선 후 논의’ ‘침묵 필요’ ‘철회’ 등으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일자리·복지 문제에 대한 포퓰리즘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실현 가능성과 재원 문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인 성장 담론은 아예 사라지고 있거나 있더라도 유권자에게 판단의 근거를 주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하다. 결국 국가적 난제 해결을 할 리더를 뽑는 데도 그 리더들의 해법이 뭔지 모르는 깜깜이 상태라는 의미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국가 경영 자질을 검증하고 선거운동 기간 내놓는 정책과 공약을 보고 대선 선택을 한다. 지금처럼 후보 검증도 정책 비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진행된다면 유권자의 선택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 대통령에게 국가 운영을 맡기고 난제들을 해결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아무리 ‘깜깜이 선거’라지만 더 검증하고 정책과 공약을 철저히 비교해 최선은 아니더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로서 우리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위한 기본 책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jh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