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은 정부가 긴급자금 수혈을 결정함에 따라 4월 만기 도래 회사채 4,400억원을 막지 못해 맞게 되는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사채권자 집회를 통한 채무재조정 등 이해관계자들의 손실 분담 동의를 받아내는 게 전제조건이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큰 고비는 넘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대우조선해양뿐 아니라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 나머지 ‘빅2’ 조선사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유례없는 글로벌 조선 경기 침체 상황을 딛고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예의주시해야 할 변수들을 살펴본다.
△글로벌 신조 선박 발주 재개
전문가들이 꼽는 핵심 변수다. 산업연구원의 홍성인 박사는 23일 “조선업계가 살아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글로벌 신조 선박 수요”라면서 “다른 변수는 발주가 되살아난다는 전제하에 주시해야 할 이슈들”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조선·해운 전문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조선소들이 따낸 일감(수주량)은 1,161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다. 지난 2013년 6,099만CGT와 비교하면 19%에 불과하다. 수주한 척수로 따지면 같은 기간 3,051척에서 513척으로 급전직하했다.
다행인 점은 전문가들이 지난해를 저점으로 본다는 것이다. 오는 2020년 1월 발효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 규제 협약이 가장 큰 근거다. IMO 협약에 따라 국제 항로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은 황산화물(SOx) 함유량을 0.5% 이하로 낮춰야 한다. 발효 시점과 선박 건조 기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발주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온다.
발주가 재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외형 축소는 중국·일본보다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대형 선박을 수주해놓은 비율이 높다 보니 선박 인도에 따른 일감 감소폭도 그만큼 크다. 실제로 한국의 수주잔량 점유율은 3월 기준 22.5%로 5년 전보다 8.2%포인트 줄어든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3.5%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쳤다. 일본은 되레 점유율이 8.2%포인트 늘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잔량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은 결국 숙련된 인력들이 유출되거나 사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국제유가 회복은 오일 메이저들의 해양 프로젝트 사업 재개와 직결된다. 대우조선해양을 직접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뜨린 원흉도 사실 저(低)유가다.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인 소난골은 대우조선해양에 12억달러를 주고 드릴십(이동식 시추선) 2기 건조를 맡겼는데 저유가로 드릴십을 용선하겠다는 곳을 구하지 못하면서 인도를 지연하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소난골 문제 해결의 포인트는 국제유가”라며 “드릴십을 가져가 운영할 채산성이 나오는 유가 수준이 되느냐가 사태 해결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뿐만이 아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저유가가 지속된 탓에 착수가 지연되거나 아예 취소된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 저유가 지속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연초까지 1년6개월간 전무했던 상황에서 유가 회복에 따른 해양 프로젝트 발주 재개는 가뭄에 단비가 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전체 수주잔액 가운데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이 70%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연초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감산 합의로 배럴당 50달러 중반까지 반짝 상승했던 국제유가는 다시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오일 메이저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배럴당 40달러 수준에서도 손익분기를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원가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제유가의 흐름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배럴당 65달러는 돼야 소난골이 대우조선해양 드릴십을 운영해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조선 굴기’
중국 정부는 연초 2020년까지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건조량)을 4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기술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해양 공정설비 분야에서도 점유율 35%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의 이 같은 공격적 목표 설정은 다분히 조선 강국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글로벌 조선 경기가 회복하는 국면에서 우리나라 조선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선박과 같은 가스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유조선은 한국 조선소들이 무시하지 못할 경쟁 상대가 돼 있다. 업황이 살아나더라도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예전과 같은 독주체제를 구축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반 상선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많이 좁혀졌지만 LNG를 연료로 쓰는 친환경 선박이나 쇄빙선과 같은 고부가 선박에서는 기술격차가 여전하다”면서 “한국 조선소들이 레드오션에서 중국과 경쟁하기보다는 기술장벽이 높은 고부가 시장에서 이익을 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삼성重·현대重 빅2 생존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 당장 4,400억원의 만기 도래 회사채 상환도 버거운 대우조선해양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겪어본 적 없는 위기 상황임은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최악의 위기 상황을 버텨 업황 개선 사이클에 올라탈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느냐는 한국 조선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필요 요건이다.
현대중공업은 비(非)조선 사업을 분사해 부채비율(106.1%→95.6%), 차입금(7조3,000억원→3조9,000억원) 등 재무구조를 대폭 개선했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기존에 수주한 선박 건조를 위한 막대한 운영자금 지출은 필연적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크(선박 건조대) 폐쇄와 직원 급여 20% 반납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어 경영 효율화 작업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말 그룹 계열사들이 참여한 1조1,4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한숨 돌린 삼성중공업의 경우 방향타를 잡아 줄 그룹 컨트롤타워가 없어졌다. 그룹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지원해줬던 주주 계열사들이 이제는 철저히 각사의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큼 예전 같은 지원을 보장받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