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처를 청와대에서 삼성동으로 옮긴 지 사흘째 되던 지난 15일 자택 앞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60대 여성 두 명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절을 올리겠다고 한 것. 이들은 “억울하고 원통해 3일을 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마”라고 절하며 울부짖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수많은 어르신은 상실감을 느꼈다. “속이 상해 밥을 못 먹었다” “마음이 먹먹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놓는 어르신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51.6%의 득표율로 박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지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마’라니. 일부 박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을 하늘이 신권을 내려준 왕이나 마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에게 박 전 대통령을 마마로 인식하게 만든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태극기집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60대 이상 어르신들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분들은 한국전쟁 이후 그야말로 폐허가 된 나라를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성장시킨 주역들이다. 그분들의 리더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는 무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 북한을 배척했고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요소들은 후순위로 밀렸다. 당시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외친 사람도 많았지만 더 많은 다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묵묵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시민들이었다. 민주주의나 인권을 주장하다 구속되는 것보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평범한 민초들에게는 더 큰 사명이었다. 폭력적 권력이 만든 사회체제를 비판하기보다 그에 순응하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면을 더 중시하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였다. 그래야만 그 시대를 안전하게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젊은 날을 살아낸 어르신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 전 대통령은 자기 삶의 가치를 현실 정치에서 증명할 아이콘이었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은 어르신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성실히 살아온 자신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체주의 칼날에 입은 상처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덧나고 있다. 이제는 그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몰락과 자신의 삶의 고귀한 가치를 분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국 그분들도 역사의 피해자다. kmh20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