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의 인공지능(AI) 종양내과의사 ‘왓슨 포 온콜로지(이하 ‘왓슨’)’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국내 병원에 침투하며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국내 첫 서비스를 시작한 왓슨은 불과 3개월 여만인 현재 부산대병원, 대전 건양대병원,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과 가톨릭대 병원 등 총 다섯 곳에 자리를 잡았다. 왓슨을 도입한 병원이 다섯 곳 이상이 되는 국가는 중국을 제외하곤 한국이 유일하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여겨지는 AI 의사가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 현상을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들에 지역의 환자들을 뺏겨왔던 지역거점병원들의 과감한 투자로 해석한다. 지역 환자들은 다른 의사의 소견이나 진단, 즉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기 위해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는 일이 잦은데 ‘왓슨’을 통해 이 같은 환자 유출을 막아보겠다는 의미다. 실제 최원준 건양대병원 원장은 왓슨을 도입하며 “지역 환자들이 다른 진단을 받아보기 위해 일부러 수도권 병원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첫 스타트를 끊었던 가천대 길병원이 거둔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던 점도 지역병원들을 움직인 힘이 됐다. 길병원에 따르면 최근 왓슨을 통해 진료를 받은 암 환자 수가 200명을 넘어섰다. 길병원 측은 “왓슨 도입 후 환자들의 문의와 관심이 확실히 늘었다”며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재빨리 도입한 첨단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져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도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진료 환경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병원 측은 “왓슨이 도입된 후 두 분야에서만 이뤄지던 다학제 진료가 위암·폐암·대장암·유방암·부인암 다섯 종으로 늘었다”며 “왓슨을 활용하는 경우 환자도 직접 참여하기에 이해도와 만족도가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의료기술과 첨단 과학에 유독 관심이 높은 한국 의사들의 특성이 이번 기회에 다시 두드러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병원 한 관계자는 “로봇 수술이 처음 나올 당시에도 도입 열기가 아주 대단했다”며 “환자에 대한 본인의 소견과 왓슨의 의견이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하는 의료진들의 관심도 이 열풍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왓슨 열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의사가 내리는 암 진단의 정확성 등이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환자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대형병원들이 이토록 무분별하게 결정을 내려도 되느냐는 것이다. 특히 왓슨은 국내 법상 의료기기로 인정받지 못해 환자에 별도 비용 청구도 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왓슨의 정확도는 아직 80% 수준에 그쳐 실제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사용하기에는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며 “결국 ‘환자 끌기 용 값비싼 마케팅’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이 비용은 어디서 회수할 런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병원 측은 이에 대해 “알려진 것처럼 왓슨의 사용 비용이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며 “환자에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왓슨이 국내에서 좀 더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십 여 곳이 넘는 지방 병원이 왓슨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뒤늦게 도입하는 것은 마케팅 면(?)에서도 효과가 없다’는 평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이 기세가 어느 정도 선에서 그치리라는 분석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