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 - 담양 소쇄원]무등산 풍광에 취한 '巨儒들의 살롱'

자연 거스르지 않는 절제미의 극치

정철·송시열·기대승 등 당대 석학들

경치 즐기며 담론 꽃피우던 사랑방

'봉황을 기다리는 집' 대봉대 등

양산보가 꿈꿨던 이상향 염원 담겨

시냇물 폭포로 이끄는 水口도 눈길

누가 “한국 최고의 경치가 어디냐”고 물으면 기자는 주저 없이 “제주”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공 구조물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창덕궁과 소쇄원(瀟灑園)”이라고 말하겠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은 주관적인 것이며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생각을 굽히지 않겠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동이라 어쩔 수가 없다. 아직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소쇄원을 찾은 것은 몇 해 전 가을에 가봤던 소쇄원의 봄 풍경이 궁금해서였다.

소쇄원과 창덕궁 후원을 국내 최고의 인공구조물로 꼽은 이유는 눈과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막연한 설명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곰곰이 더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구조물과 자연의 조화 때문인 듯싶었다. 창덕궁은 산세를 이용한 까닭에 세상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비대칭구조이며 그런 파격은 절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소쇄원도 마찬가지다. 무등산 원효계곡을 의지해 자리를 잡은 소쇄원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몸을 맡기고 있는 평화로운 형국이다.


소쇄(瀟灑)라는 의미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사대부의 몸가짐을 지키려고 했던 양산보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 정신이 깃든 소쇄원의 봄 풍경을 보고 싶어 찾은 담양에는 아쉽게도 봄기운이 충분치 않았다. 나뭇가지는 잎이 없이 앙상했고 봄의 전령의 산수유만이 홀로 피어 있었다.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은 1530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자연에 귀의하기 위해 지은 별서(別墅·따로 지은 집) 원림(園林)이다. 원림이란 정원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정원이 사람의 손으로 조경을 한 것이라면, 주변 자연환경에 의탁해 인공미를 절제한 것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도 소쇄원의 기품이 당당한 이유는 그곳에 깃든 정신 때문이다.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는 열다섯 나이에 조광조의 문하로 들어가 수학했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 후 사약을 받고 유명을 달리하자 현실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창암촌 계곡으로 들어가 소쇄원을 짓고 칩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산보의 칩거는 칩거로 끝나지 않았다. 근동(近洞)은 물론 먼 곳의 선비들이 찾아들어 풍광을 즐기며 정치와 문화 예술에 관한 담론을 이야기하던 한국판 살롱문화의 산실이 됐기 때문이다. 소쇄원에는 정철·송시열·기대승 등 거유(巨儒)들이 모여들어 시국을 논하고 나라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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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정신이 녹아 있던 소쇄원의 구조는 담의 안쪽인 내원(內園)과 바깥쪽인 외원(外園)으로 나뉘는데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담 안쪽을 말한다. 소쇄원의 건물 중 제월당과 광풍각은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음)에 비유한 것에 유래했다. ‘비 갠 하늘의 달과 같은 집’인 제월당은 주인이 공부하던 건물이며, ‘해가 뜨며 불어오는 맑은 바람 같은 집’ 광풍각은 손님을 맞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소쇄원 입구에 있는 ‘풀로 만든 집’이라는 의미의 초정(草亭)과 ‘봉황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대봉대(待鳳臺)는 양산보가 꿈을 꿨던 이상향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소쇄원의 여러 구성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는 수구(水口)다. 수구는 오곡문(五曲門) 아래에 있는 물길이다. 이곳을 통해 들어온 물은 독목교(獨木橋)라는 나무다리 밑을 흘러 아래로 내려간다. 물은 바위의 작은 연못 조담(槽潭)에서 머무르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떨어져 십장폭포가 돼 떨어진다.

물은 다시 통나무홈통을 거쳐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라고 불리는 두 개의 네모난 연못에 도달한다. 이 물은 작은 수차를 돌리며 광풍각 아래 계곡으로 내려간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는 소쇄원은 건축사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민간 정원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됐다. 양산보의 자손들이 15대에 걸쳐 관리하고 있는 소쇄원 근처에는 송강정·환벽당 같은 별서원림들과 대나무로 꾸며진 정원인 죽녹원 등 둘러볼 곳들이 많다. 오전9시부터 오후7시까지 개방한다.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061)382-1071 /글·사진(담양)= 우현석 객원기자

소쇄원의 계곡에 봄기운이 물씬하다.소쇄원의 계곡에 봄기운이 물씬하다.




소쇄원 광풍각.소쇄원 광풍각.


소쇄원 수구.소쇄원 수구.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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