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코스피지수를 나 홀로 끌어올렸던 외국인이 갑자기 증시에서 사라졌다. 3월 들어 지난 21일까지 하루 평균 2,500억원의 순매수를 보이던 외국인이 1주일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순매도로 돌아선 것도 아니다. 하루 평균 178억원을 순매도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매매를 보이고 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내부 변수보다는 외부 변수에 외국인들이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케어’의 좌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데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협상까지 시작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이에 따라 1·4분기 기업실적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당분간 시장은 얕은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0.17%(3.67포인트) 오른 2,166.98에 장을 마쳤다. 전일부터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23일 장중 연중 최고치인 2,182.42를 기록한 후 하락해 지지부진하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33억원, 324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만 360억원을 사들였다. 이날 외국인이 매도한 주요 종목은 현대중공업(878억원), 삼성전자(741억원), 엔씨소프트(154억원), 현대모비스(143억원), 기아차(76억원) 등이었다.
그동안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수세가 최근 빠른 속도로 둔화하고 있다. 이달 6일부터 17일까지 10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유지하던 외국인은 이후 뚜렷한 방향성 없이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고 있다. 21일 코스피에서 3,626억원을 사들인 뒤 22일 962억원을 팔았고 23일 526억원 매수 이후 24일 다시 890억원 매도로 돌아섰다. 27일과 28일은 각각 364억원, 207억원 소폭 매수에 그쳤고 29일 다시 매도로 전환했다. 이 기간 코스피에서 외국인들의 매매비중도 21일 34.5%에서 29일 30%로 줄어들었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순매수세가 둔화돼 코스피가 재차 2,160선까지 후퇴하는 등 추가 반등이 여의치 않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 둔화는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건정책인 ‘트럼프 케어’가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중심으로 한 재정정책과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제정책 등 새 행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의문이 커지며 외국인의 한국 시장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의 불확실한 재정정책이 미국과 한국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해 한국 증시는 상승폭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브렉시트 협상이 개시된 점도 외국인 투자가들의 우려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정부는 29일(현지시간)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해 EU와 본격적인 탈퇴 협상을 시작했다. 김세찬 대신증권 연구원은 “협상 개시도 전에 영국과 EU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며 “브렉시트 리스크가 시장에 선반영된 측면이 있지만 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변수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외국인들의 숨 고르기가 기업 실적발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2,150선 이상에서는 방어적인 포트폴리오 대응이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